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오랜 해후

등경 2024. 7. 18. 17:53

오랜 해후
 
장마비가 내린다. 서울과 중부 지방이 오늘은 물폭탄을 쏟듯 곳곳에 난라라고 한다. 10시경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원래 오늘 장로님 부부와 점심 약속을 하다. 수화기로 들리는 내용은 비가 많이 내리니 다른 좋은 날 택해서 만나자는 것 같다. 그래 오늘 약속은 어렵다고 생각하다. 아닌게 아니라 아내가 오늘 모임은 어렵다고 한다.
 
나는 오늘 나가는 걸 포기하다. 빗줄기가 약해지는 듯 싶더니 그친 거 같다. 11시 되기 전 아내가 다시 전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다. 오늘 어차피 약속을 했는데 점심은 때워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상대방에게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보다. 아니 아내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할 정도다. 결론은 오늘 다시 점심 약속을 살리다.
 
우리가 진북동 W아파트로 가다. 원래는 오늘 11시 만나기로 했는데 11시 반 만나기로 하고 아파트에 도착하다. 벌써 장로님 부부가 나와 있다. 나는 이 아파트로 가는 시간에 만감이 교차하다.
 
이 분과는 20년전으로 돌아가서 좋은 사이로 지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나 정년을 하고 바로 직후에도 가끔 나들이를 즐기다.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점심을 하고 어쩌다 보면 저녁 때가 되면 저녁도 가볍게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우리 교회 선임 장로이시기에 내가 장로가 되기 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장로가 된 이후도 비교적 좋은 사이로 지냈었다. 그런데 어느 모임때 사단이 났다. 그 장로님이 나에게 많은 사람이 있는 모임에서 나를 비하하면서 하대를 하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오해였는지 의도적이었는지 도저히 내가 생각하기에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때부터 그 분을 경원시했다. 내가 인간적으로 상처를 받기는 첨이다.
 
내가 존경한 사람이었고 장로였다. 한 순간 그러고 보니 나는 도저히 이 사건을 이해할 길이 없었고 그뒤부터 사람은 절대 믿지 않기로 작정하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이 일을 겪고서는 확 달라지다.
 
그러기에 이 분을 교회에서 항상 만나야 하는데 불편했다. 그 분의 나에 대한 태도도 싸늘하다. 나도 애써 이 분을 마음 속에서 지우다.
 
그러고서 코로나가 터지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용납이 되질 않고선 더더욱 이 분과의 아주 형식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다. 이 분을 사적인 모임에서 만난 것은 육년 전으로 돌아간 거 같다.
 
그러고서 만나는 것이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파트에 도착해서 예전에 했던 것 처럼 인사하고 자연스레 내가 오늘은 이런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을 하다. 염소 고기를 잘 먹질 않아서 찜찜해 하는 처지라 하더라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서 이 분을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에 한번 가보고 이번에 두번 째로 가는데 그 식당으로 안내를 하다.
 
그 식당은 삼천동에 있는 Y흑염소 집이다. 식당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놀라 자빠질뻔 하다. 아니 이 집이 흑염소탕이 전에 18,000원 하던 것을 세일해서 13,000원에 하니 삼복 기간에 나이든 분들이 이 식당을 찾아 인산인해를 이루다.
 
나는 장로님 부부에게 양해를 구하다. 어치피 이곳에 왔으니 이 곳에서 좀 기다려 식사를 하자고 하다. 대기 손님들도 상당수다. 나도 접수를 하니 12번이다. 접수번호를 받아들면서 커운터에 주인에게 수육도 있냐고 물어보니 1팀에게 팔 수육은 있다고 한다.
 
오늘 점심은 수육에다 탕 두 그릇을 했으면 해서 미리 주문을 하다. 그런데 중간에 아내는 수육은 주문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내 생각대로 주문을 하다. 30분 기다려 우리 자리가 정해지고 식사를 하다.
 
수육을 먹는 순간 맛있다. 고기가 부드럽고 맛있다. 장로님 부부도 맛있다고 한다. 오늘 메뉴는 이 정도는 합격점을 받으리라 생각하다. 수육을 맛있게 먹고 탕도 먹고 그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다.
 
자리에서는 자연스레 두 분이 이번에 건강상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자연스레 이야기가 전개되다. 나도 말 조심을 하려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어색할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가니 그런 모습을 연출되지 않았다.
 
그래 용서 못할 거 없고 이해 못할 것 없다. 오히려 내가 그런 감정으로 사람을 외면한 내가 죄인이다. 그런 긴 공백이 오늘 만남으로 자연스레 풀어지는 듯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권사님이 보리밥집을 찾고 싶은데 못찾았다고 찾고 싶어한다. 내가 가 본 곳이다. 그걸 핑계로 그 곳을 들려보자고 나서다. 전에 근무한 목사님 교회를 찾아보고 그 식당을 확인시켜 주고 집으로 돌아오다.
 
전에 이 분들을 만나면 낮에 점심을 하고 의례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왔으나 오늘은 미루고 다음을 약속하고 돌아오다.
 
오랜 침묵 속에 이루어진 만남이다. 오랜만에 만나고 보니 올해 이 장로님 부부에겐 건강 문제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고생을 너무 한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서 공감도 하고 연민의 정도 느껴보다.
 
오늘은 만나지 못하고 다음 만나자고 해도 언제 만날지 그동안 어색한 관계가 더 어색하지 않을지 고민을 했으나 그 고민들을 말끔히 털어낸 만남의 자리다. 이후엔 또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하자. 세월이  약이다.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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