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단상/익산어양중

퇴임식_북경

등경 2017. 2. 23. 14:48

퇴임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제가 교사로 시작하는 날이 있었듯이 오늘은 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이런 날을 마주대하니 설마 했지만 그 날이 왔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순간이 제가 지금껏 살아 온 날을 총 결산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맹자는 得天下英才而敎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 三樂也(삼락야)라고하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함이 세번째 즐거움이라 했습니다.
36년동안 저는 학생들과 함께 했고 2세 교육을 업으로 살아온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노정에 한 점의 바람도 없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제 삶에 있어서 별다른 큰 바람을 맞지 않고 큰 사고 없이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 생각합니다.
소년시절, 법관이 되고 싶었던 꿈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장학사를 거쳐 마지막 어양중 교장으로 퇴임하게 된 것 또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어양중 교장으로서의 생활은 저에게 크나큰 기쁨이었습니다. 2012년 3월 1일 부임해서 만 5년을 보냈고 어양 학생을 만나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께서 함께 교육을 고민하고 어양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고, 학교운영위원 및 학부모님들께서는 전폭적으로 학교를 응원해주셨으며 이 분들이 저의 최대의 지원군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처음 어양중을 찾아오는 날 저는 소년처럼 좋아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 많이 다녀본 저로서는 앙증맞은 건물, 넓은 운동장, 잘 들어선 교실 등이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모두가 다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동안 학생들과 1학기말에 치렀던 합창제, 스포츠클럽 대회, 강당에서 진행한 나의 비전 발표대회, 2학기말의 축제는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울타리도 만들고 산뜻한 보도블록으로 단장된 등굣길에서 학생들의 등교를 맞이하는 시간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교육을 위해 달려왔어도 교육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람되게 교육을 열정과 사랑으로 정의해보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열정과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교육은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정의하지만 저 자신도 그런 열정과 사랑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아니 잘못한 부분을 몇 가지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예전엔 학생의 인권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문화라고 당연시하고 그까짓 것쯤이야 아예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감정이 실려 있는 체벌이 있었지요.
둘은 지금은 집단 괴롭힘이 많이 연구되어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예전엔 이런 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 개개인의 맞춤식 생활지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셋은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습니다.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더 나은 교육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미래를 살아갈 우리 학생들이기에 미래를 열어주고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제 이 부끄러운 고백이 여기 계신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생각해볼 기회가 되어 2세 교육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저는 욕심스럽게 저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옆도 돌아보고 남도 배려하고 봉사도 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가화만사성이라 하지요.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아내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학교에 나와 충실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니 집안일을 눈을 감고 그동안 살아왔으니 요즘이라면 쫓겨나도 여러 번 쫓겨 났을 법도 하지요.
태어나서 학교만 다닌 세월이라 세상에 나가려니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매일 가는 길이 사라져 앞 길이 안개 가득한 길로 보일 수도 있겠죠.
허나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도 있는 법입니다. 세상엔 사는 사람만큼 길이 있다고 하니 길이 없다면 만들면서 살겠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잘 계획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는 비록 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하지는 않지만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원하는 일들을 잘 이루시길 바라며 가정 대소사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제 인사의 마지막을 이해인의 ‘이별의 눈물’이라는 시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별의 눈물
이해인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겉으론 무심해 보일 테지요

비에 젖은 꽃잎처럼
울고 있는 내 마음은
늘 숨기고 싶어요

누구와도 헤어질 일이
참 많은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수록
헤어짐이 두렵습니다

낯선 이와
잠시 만나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눈물이 준비되어 있네요

이별의 눈물은 기도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
순결한 약속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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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 강당에서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12시 인근 식당에서 퇴임식이 있었다. 퇴임식에서 교직원과 운영위원 등 내빈이 모인 곳에서 퇴임 인사를 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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