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단상/익산어양중

마지막 풍경

등경 2017. 2. 3. 14:37

오늘은 2월 3일이다. 이 날은 남다르게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생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날은 나의 양력 생일이다. SNS에 이 날이 올라있어 그런지 아는 집사님 등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생일 축하한다고. 또 다른 분이 전화를 한다. 이 날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인하기도 그렇다. 아뭏튼 제 입장에서는 귀하게 생각하는 날이다. 점심때도 아는 직원으로부터 넌지시 생일이냐고 묻는다. 앞으로는 양력으로 바꾸고 싶다는 아내의 이야기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인생 후반부를 살면서는 이 날로 바꾸고 싶다.

즐겁게 출근하다. 다음 주는 졸업식이 화요일 있어서 오늘 등교맞이를 마지막 하고 싶었다. 외투를 입고 정문으로 나서다. 어양중을 마지막으로 이달 퇴임을 한다. 이제 어느 곳에서 이럴 수 있을까 하면서 감상에 젖으면서 정문에 서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과 교감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전에는 일주일에 한 두세번 했다가 요근래 들어와서는 비가 오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 곳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3학년 학생이 있어 어디로 진학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학생들은 휴대폰에 익숙해서 전화를 받고 들어오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학생이 있어 인사를 해도 정말 모르고 지나가는 학생도 있다. 겨울철이고 학년말이 되어서 그런지 등교시각에 맞추어서 부모님이 태워다 주는 학생이 꽤 많이 눈에 띤다. 요근래 살피지 못해선지 정문 쪽이 휴지 등이 많이 널브러져 있어 오후에는 청소를 부탁하고 싶었다.

2교시 후 아는 인근 교회 전도사님이 찾아오셨다. 장학금을 주고 싶다고 작년 12월 말에 찾아오셨길래 12월에는 장학생을 선발할 수 없고 좀 여유로울 때 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주초에 부탁을 해서 담당자가 선발했다고 어제 이야기를 하길래 어제 전화통화를 해서 오시라 했다. 1학년 1명 2학년 1명 2명에게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주는 쪽의 성의가 크게 엿보였다. 이런 일은 많이 있을수록 좋겠다. 장학금을 수여하고 30분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학기 중 수요일 점심때면 음료수와 먹을 거리를 가지고 오셔서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우리 학생들을 격려해주시고 우리 학교를 응원해주신 분들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고 그동안의 일에 감사를 드리다.

점심때다. 점심 시간 이전에 식사를 했기에 4교시 끝종이 울려 반사적으로 식생활관으로 향하다. 오늘 같은 날 급식 지도를 할까 생각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일찍 나오셔서 지도에 열중하고 계시다. 다음 주 하루 급식이 있지만 이 일도 오늘 마치려 한다. 거의 이 일은 빠짐없이 5년을 해오다. 나는 직접 지도하지 않는다. 너무 질서가 흐트러질때 내가 나선다. 그리 크게 개입하지 않아도 우리 학생들은 훈련이 되어서 아주 잘 한다. 이것도 그동안 꾸준히 훈련해온 결과라 본다. 이 일 또한 마지막이다.

학생들이 떠난 학교를 한바퀴 돌다. 4층에 올라 3-6반 교실을 들여다 보다. 곧 졸업을 하기에 학급 전체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3-3반 복도를 지나려니 담임선생님이 뒤 게시판을 정리하고 계신다. 너무도 수업도 잘 하시고 아이들 지도도 젊은 분인데도 차분하게 어른스럽게 잘 지도하시는 분이다. 이제 학생을 상급학교로 진학시키고 내년 올라올 학생을 위해 학급 교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계신다. 이 모습을 보고 역시 책임감이라고 하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알다. 학생이 떠나간 교실을 정리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이 모습을 휴대폰에 담을까 말까 망설이다 하다 3층으로 내려오다. 2층에 오니 학생들과 교실 청소를 하는 학급이 있다. 1-2반이다. 이제 학년말 마무리를 하고 새학년을 시작해야 한다. 중간 중간 사물함 있는 장소는 사물함이 다 치워지고 문을 열어 놓은 곳이 많다.

마지막 모습이다. 마지막 모습은 왠지 쓸쓸하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새로운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한다고 보면 그리 서글퍼할 일도 아니다. 다시 3월이면 활기찬 모습으로 많은 학생들이 바쁘게 여기 저기를 오가겠지. 준비하자고 오래전부터 외쳤는데 떠날 준비를 아직도 못하고 있다. 마지막 행사인 졸업식이 있어서 일까. 책장도 방학을 이용해서 정리하려 했으나 졸업식을 멋지게 치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내 짐을 정리하기로 맘먹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다. 끝마무리를 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아직 나의 인생 후반전이 많이 남아있어서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2017.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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