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단상/익산어양중

불쌍한 스텐레스 컵

등경 2014. 11. 28. 13:42

점심식사를 하고 행정실에 들러 잠깐 책을 사러 외출을 하겠노라 하고 나오는 사이에 복도에서 식생활관에 있는 컵 소리가 난다. 컵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동안 수없이 컵이 식생활관을 나와 수모를 당한 꼴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번에 컵이 밖에 나와 나뒹기는 것만 봤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첨이다. 

나가 보니 복도에서 3학년 몇 학생이 장난을 치고 있어 좋게 타이르고 보내다. 신발장에 가서 신발을 갈아 신고 나가는 사이에 좀 묘한 풍경이 벌어지다. 컵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으나 진짜다. 아까 그 학생이 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다. 요즘 우리 학생들의 의식 수준을 가늠해보다. 이 정도구나. 감히 우리 학창 시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동안 수없이 컵을 찾아 식생활관에 갖다 주었다. 강당에 있는 음료수대 위엔 점심 시간이 끝나고 나면 수십개의 컵이 놓여 있다. 조리사 분이 일단 식생활관에 나와서 컵을 가져간다. 우리가 잘못 가르쳤나? 스스로 자문해본다. 우리 학교만이 아닐게다. 가정에서도 제대로 교육을 못시킨 탓이다. 컵을 던지고 중앙계단으로 올라가는 학생을 불러서 오라 하다. 3학년 7반 이*오다. 그 때 학생을 불러 세우니 잘못했다 하면서 식생활관에 갖다 놓겠다 한다.

앞으로 우리 이 어린 학생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보다 이 학생들이 잘 산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 우리가 단군 이래 최고 잘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어느 일간지 기사에 우리가 중국사람에게 마사지를 받는 마지막 세대일른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기사가 생각난다. 그런 나라인데 우리 학생들은 전혀 가난을 모르고 살아서 저런 행동을 하나 싶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나도 난감하다. 귀한 거 없이 지낸 우리 아이들이 어려운 세상이 닥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 때 어떤 행동을 할까 하는 자문도 해본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자. 모르면 우리 기성세대가 가르치자. 이 땅의 부모들이 가정의 밥상머리에서 근면 검소 절약 교육을 똑바로 시켰으면 한다. 먼저 사람부터 되는 교육을 모두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사고 싶은 책을 사러 나가다. 이웃 학교 주위에 학생들이 많이 나와 있다. 물어보니 외출증을 가지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한다. 이곳은 두 명의 지킴이가 있다. 어디나 똑같다. 갇힌 학교라 생각하고 나가고 싶은 욕구를 한없이 발산하는 학생들이다. 이런 분출 욕구를 어떻게 해야 자제하고 가라앉힐 것인지 또한 그 생각을 하면서 서점에 가서 원하는 책을 사들고 들어오다.

2014.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