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단상/익산어양중

'진실을 밝힐게요. 비밀은 보장해주세요.'

등경 2014. 9. 23. 08:42

오늘도 진입로에 나가서 학생을 맞이하다. 키큰 학생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온다. "교장선생님, 저 아시죠?, 지난주 욕했다고 제가 사과했잖아요." 라고 하면서 내 어깨를 만진다.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내 어
깨를 만지는 것이 나는 조금 불편해하면서 학생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학생은 내 어깨를 주물려주는 생각을 한 거 같다.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 실은 지난번 욕을 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민이가 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민이에게 말하지 말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뻥찐 기분이다. 그렇게 진심어리게 이야기를 하니 사실인거 같다. 더 다시 확인이 필요없다 생각해서 급사과를 하고 진실을 이야기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서 보내다.

 

사실은 이렇다. 지난 주 금요일이다. 학생들이 하교를 해서 교실을 둘러보려고 1층 복도를 지나가다. 어떤 학생이 반갑게 나를 부르면서 쫓아온다. 나에게 다가오자 마자 나보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하면서 응석 반 고자질을 한다. 2학년 *반 학생인데 아침 독서 시간에 8시 20분에 왔는데 담임선생님이 지각했다고 벌점을 주었다고 한다. 자기는 20분전에 교실에 도착했고 다른 학생은 자기보다 늦게 왔는데 벌점 처리를 하지 않고 20분 후에 자기를 발견하고 벌점을 부과했다고 흥분을 한다. 이런 경우 담임편을 들수도 없고 학생편도 들기도 민망해서 양비론을 적용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먼저 긍정적으로 학생의 이야기를 받고 담임선생님도 인간인지라 실수도 할수 있다고 얘기하다. 너도 억울할 수 있지만 너의 행동에도 좀 문제가 있다라고 하면서 혹 다음에도 담임선생님이 잘못 벌점을 부과하면 정식으로 잘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보내다. 세 명이 나에게 왔고 한명은 2학년 6반 김*엽이고 나에게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한 학생은 2학년 4반 황*성이고, 한 학생은 같은 반 친구 박*민이다. 황*성이는 나에게 친한 척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말하는 것이 밉지 않고 다른 행동은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교실을 돌고 다시 1층 동편 출입구에서 세 학생을 마주치다. 그런데 학생 누구가 '월요일 담임  **년....'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맨 앞서 가는 *성이를 부르다. 누가 했냐고 하니 잠깐 침묵이 흐른다. *엽이는 입구에 앉아 있고 *민이는 바로 내 옆에 서 있다. *성이는 나와 좀 떨어져 있다. 나는 *엽이에게 혐의를 두다. 그런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성이가 했다고 한다.

 

이어서 나의 넋두리가 시작되다. 나는 *성이를 착하게 봤는데 그럴줄 몰랐다.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 담임에게 그러는데 부모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회 이야기를 하다. 교회를 다닌단다. 그래서 난 더 목청을 높이다. 교회 다닌다는 녀석이 그러면 안된다는 말까지 하다. 그리고 이번 주일 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회개하란 말까지 한 사람이다.

 

그런데 꾸중을 했던 *성이가 아니고 다른 학생이라고 하니 그동안 *성이에게 한 나는 어찌하란 말이냐. 의협심에 빨리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어서 *성이가 십자가를 진 것이다. 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성이가 범인이라고 단죄를 한 것이다.

 

오늘 이 사건을 접하면서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세상 살다 보면 이상하게 잘못 엮어서 억울한 사람도 나오고 피해보는 사람도 있고 진실이 호도되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으며 거의 학생들이 다 들어와 교장실로 걸어들어오면서 작은 거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거 같다.

 

윤성이가 그동안 주말을 보내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누명을 벗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잘 헤아려 판단하리라고 다짐해본다.

 

2014.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