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오전 11경 전화 벨이 울리다. 저장되지 않는 번호가 뜨다. 내가 어제 전화를 부탁한 친구임을 직감하다. 맞다. 친구다. 고향 친구다. 추석 연휴 때 카톡에 추석 인사도 아니고 사이트 하나 올려 놓은 게 하나 떴는데 보낸 사람이 친구다. 반가워서 나도 답은 했다. 통화하고 싶었으나 전화번호를 검색했으나 없다. 통화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하루를 보내다. 어제 추석연휴 마지막 날 간단한 메시지로 내 전화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를 부탁하다.
그 전화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 친구와는 고향 친구이다. 중학교 동창으로 전주로 유학을 오면서 같이 하숙을 하다. 말이 하숙이지 숙식이 변변치 않았다. 하숙을 동서학동에서 했는데 나는 진북동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 친구는 전주농고 지금은 생명과학고라 하여 인후동이다. 나와는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외가 쪽으로 맺어져 있어 여러 가지 인연이 깊은 친구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와는 1학기를 같이 숙식을 하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되면서 어느 날 학교 근처로 하숙을 옮기겠다고 하여 헤어지다. 그 때는 섭섭했다. 나는 동서학동에서 사촌형과 1년을 같이 지내다.
반가워서 이것 저것 묻다. 어디 살고 있냐고 했더니 경기도 부평이란다. 지금은 하는 일 없이 운동하고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레 자식 관계로 옮겨가 내가 묻다. 자식은 몇을 두었냐고 했더니 둘을 두고 다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아들은 결혼을 하여 손자 셋을 두었다고 하고 딸은 아직 혼인을 하지 못했다고 전제를 하고 물어보다.
답이 의외다. 아들은 하늘 나라로 갔다고만 한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단지 딸 하나가 외손자 하나를 낳아 키운다고 한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좋은 소식을 들었어야 하는데 내 의지와는 정 반대다.
오늘도 더워 인근 초밥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새마을금고 4층에 가서 차 한 잔을 하다. 책을 읽는데도 오늘 오전 통화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맴돌아 뭔가 큰 것을 잃은 듯 아쉬움이 내 마음에 가득하디.
오랜 만에 통화를 한 점도 그렇고 내가 들은 이야기도 그렇다. 사촌형도 내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학문을 좋아하여 문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형인데 약 십오년 전 교통사고로 하늘 나라로 가다. 또 오늘 그 형이 그립다. 형이 살아 있으면 내가 현재 한문공부를 하고 있어서 형과 대화하고 많이 물었을 것이다. 친형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던 형이었는데 이승엔 없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돌아가 그 때의 삶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학교가 멀어 걸어다니면서 학교에 가면 옷이 다 젖기도 하다. 하숙집 음식은 김치 하나에다 특별한 반찬은 없었던 거 같다. 별 양념도 들어가지 않아 쓴 맛이 강하게 난 김치로 기억한다. 하숙집 방은 천정이 낮아 생활이 좀 불편하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이 고구마 넝쿨처럼 쏟아진다.
요즘 새마을금고로 더위를 피해 갈 땐 고사성어 백과사전을 들고 그 곳을 간다. 독서를 제대로 하고 온다. 현재 반절을 읽고 있다. 이 책은 한 때 버릴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보배로운 책이다. 한자특급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고사성어를 공부하는데 고사성어 관련 글자 그대로 백과사전이다. 해설이 맛깔스럽다.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들이 잘 나와 읽기도 쉽다. 춘추좌씨전 사기 등 전거가 풍부하다.
오늘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는 성어를 접하다. 흰 말이 벽틈으로 지나간다는 말로,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비유한다. 세월이 빨리 흘러 어느새 나는 칠순에 도달하다. 그 땐 십대였다.
오후 내내 아쉬움에 그냥 지날순 없다. 글이라도 써야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다. 전주 오면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하고 통화를 맺다.
그 친구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사촌 형도 보고싶기도 하다.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나를 짓누른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했는데 믿음이 부족하여 근심 걱정으로 전전긍긍이다.
그래도 성경 구절 하나 읊조린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2024.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