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방송대

유회장님! 죄송합니다.

등경 2023. 12. 8. 18:34

유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학우의 시험 공부를 방해한 죄목이다. 마땅히 중형에 처해져야 하리라 생각한다.

오늘 방송대 2학년 2학기 마지막 기말고사일이다. 지난 금요일은 세 과목을 치렀고 오늘은 두 과목이다. 오전 중국어4 과목을 열심히 듣다, 단어와 회화 중심으로 다 듣다. 새벽에 한 강좌 듣고 오전 9시부터 8개 강의를 1220분까지 한번 반복을 하다.

어제 미진한 한문 과목은 두 개 단원을 남겨 놓고 오늘 시험 직전 방송대 가서 보기로 마음 먹고 오전 공부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다.

식사후 다른 때 보다 일찍 방송대로 향하다. 310분 시험이 시작되어 약 25분 시험을 보고 시험실을 나서다. 걱정은 되었으나 시험 문제는 평이한 편이라 쉽게 보다.

 

시험을 마치니 왠지 허전한 생각이 든다. 지난번 시험은 문제가 무언지도 모르고 봤다면 오늘은 비교적 잘 본 편이다. 오히려 지난번 시험을 열심히 준비해서 치렀더라면 오늘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떠났을 거다.

 

차는 지하 주차장에 있다. 지하로 내려 가지 않고 1층을 들르고 싶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다. 1층에 내려가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입구에 총학생회 띠를 두르고 앉아 있는 학우가 있다. 차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어 차 한잔도 하고 싶었다. 물통으로 다가서니 나에게 차 한잔 하시라.’ 권한다. 메밀차도 있고 현미차도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커피 봉지를 들고 커피를 컵에 털어넣고 수저로 저어 커피 한잔 마시다.

 

앞에 앉아 있는 학우가 듬직하다. 쉽게 말을 걸다. 물어보니 총학생회 임원이란다. 돌아가면서 안내 봉사를 한단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말을 걸다. 왜 여기 계시냐고 시작하다. 알고 보니 컴퓨터 과학과 3학년 생이다. 올해 방송대에 입학했단다. 컴류터 이야기를 하다가 통성명을 하고 더 깊은 이야기를를 하다. 나도 신분을 밝히다. 물어보면 대답도 시원하게 하고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준다. 가뜩이나 방송대가 나 홀로 다니다 보니 이렇게 방송대생으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이야기를 하고 보니 일을 하다 보니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직장도 다른 일을 하다가 얼마 전 하고 싶은 맡았다고 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내 과거 이야기도 하고 방송대 입학한 이유도 서슴없이 하다. 그러고서 학우니까 시험을 다 봤느냐고 묻다가 나도 모르게 그 유○◌회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나도 모르게 사죄를 하게 된 것이다.

이유인즉 이 학우가 오늘 5시 시험을 치른 수험생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얼마나 주제넘은 사람인지 내가 정말 꼰대임을 여실히 증명한 30분이었다.

 

내가 그 학우의 시험을 방해한 것이다. 나를 위안시키기 위해 자신이 더 공부를 했다고 해서 전혀 시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나를 위로한다. 악수를 뜨겁게 하고 거듭 사죄를 하고 지하로 내려오다.

그런데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 학우는 내년 과회장을 맏게 되었다고 한다. 내년엔 더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다짐을 하다. 내년엔 나도 더 열심히 해보련다. 오늘 문자 메시지를 받다. 지난번 11111급 한자 능력 급수 발표를 오늘 한다고 했다. 집에 와서 확인하다. 또 200만점160점 커트라인에 3점 모자라다. 지난번도 157점 이번도 157점이다. 올 겨울 방학 과제가 주어지다. 이번엔 시험 준비를 해서 열손가락으로 모자라 패배의 쓴잔은 맛보았기에 내년 2월 치르는 이 시험은 거뜬히 넘어보자.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가 사분 높은 장대를 훌쩍 넘듯이 말이다.

만일 또 고배를 마신다면 이젠 접으련다. 겨울방학이 기다려진다.

 

2023.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