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다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노승의 이야기가 있다. 물욕, 성욕 등 다른 욕망은 어느 정도 극복은 했더라도 이름 석자 알리고 싶은 명예욕은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이 이름 석자 알리고 싶은 욕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다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아침 독서 시간이다. 교내 순회를 하다 어느 반 복도에 멈춰섰다. 몇몇 학생들이 일어서서 돌아다니고 소란스럽다. 어느 한 학생도 떠들길래 제대로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이름을 불렀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그건 내 이름이 아닌데 그 이름을 불렀다고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농을 한다. 내가 부른 이름은 2학년 학생들 가운데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에서 소문이 난 학생이다. 반 학생들은 그 학생을 향해 내가 부른 이름을 연호하면서 그 학생이래라고 키득거린다.
아차 내가 학생의 이름을 잘못 불렀음을 직감하다. 나도 머쓱해서 반 분위기를 수습하고 교실을 나서다. 3층에서 4층으로 가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다. 학생의 이름을 부를려고 한 노력은 잘한 일일지 몰라도 다른 학생의 이름을 부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일 거 같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 일이다. 이름을 부르지 말일이지 다른 이름을 그 학생을 보면서 부른 건 잘못이다. 4층을 돌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 학급이 가까이 있어 그 반을 들어가다. 가면서 크게 그 학생을 이름을 부르고 교장실로 데려오다.
방금 전에 있던 일을 상기하면서 그 학생에게 뒷모습이 비슷해서 이름을 잘못 불렀노라고 변명을 하다. 교장실에 데려와서 음료수를 주면서 이름을 잘못 부른 거고 학생의 이름을 잘 아노라고 달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만약 추수 지도를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별일이야 없겠지만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2주 전에 있던 일이다. 여학생 두 명이 찾아오다. 내용인즉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번호를 불렀다고 나에게 항변하러 오다. 모 선생님이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니까 다른 것은 말하지 않고 선생님이 내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불럿다고 이게 불법이라고 나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나도 크게 웃으면서 요즘 학생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다. 인터넷에서도 검색을 했노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다. 잘 설득해서 보내긴 했어도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요즘 선생님들은 이름을 부르려고 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시월 말 분만 교사가 있어 임시 담임을 배정하다. 임시 담임 배정하기 어려웠지만 배정 받은 담임이 다른 업무 처리도 어려운데 반 학생들을 만나기 전에 수업도 들어가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그 반 학생들 모두 외워들어갔다고 주위 선생님이 귀뜸을 한다. 대단한 선생님이시다.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다.
나도 학생들이 이름을 외워 보려고 노력한다.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이름도 비슷비슷 해서 외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학생의 이름을 부지런히 외워보려는 노력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201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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