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화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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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 "낙화"에 대하여
이 시는 크게 세 개의 의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3연씩 3단락으로 구분해 보면, 자아의 시선이 외계에서 내면으로 향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① 첫 단락 : 화자의 눈에 보이는 광경
시간은 물론 여명이다. 바람에 꽃이 진다는 것은 화자의 심정에 곧바로 대응한다. '꽃'은 결국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이며, 바람은 꽃이 지게 하는 힘이라 본다면, 화자는 어떤 세태의 힘에 의해 은둔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람을 탓하지 않고 그것에 순응하는 동양적 달관의 의식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인내와 성숙을 동반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밤은 '귀촉도 울음'이 있던 절망과 한의 시간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시류(時流)에 그는 은둔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② 둘째 단락 : 시선이 뜰에서 방문에 이름
화자는 계속 방안에서 밖을 응시한다.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니 촛불을 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량하고 불행하게 진 꽃이지만, 꽃 그림자가 비친 하얀 미닫이가 아련히 붉다고 보는 데서 시상은 전환을 준비한다. 즉 '낙화 → 낙화의 아름다움 → 은자의 고운 마음'으로 고양되는 시상 전개의 분기점을 이룬다는 말이다.
③ 셋째 단락 : 시선이 내면에 이름
낙화를 보는 선비의 이 고운 마음을 남이 알까 봐 두려워하는 심정에서 선비 정신의 본질 하나를 보게 된다. 내적 자부심을 겉으로 자랑하지 않으면서 강한 자기 긍정에 몰입해 있던 정신이 그것이다.
꽃이 지는 광경을 보는 화자의 마음은 울고 싶다고 한다. 이때의 울음은 단순한 한이 아니다. 첫째 단락에서의 한의 정서는 이미 순화되어 있으며 고도로 절제된 체념의 경지에서는 한은 겉으로 터뜨려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은둔적 삶의 고독과 자기 긍정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울고 싶다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인 낙화(落花) 광경이 주는 정신적 미감에 빠져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낙화 광경이 주는 정취(情趣)가 즐겁고 명랑하지는 않다. 서글프고 가련하며 비감(悲感)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정경이다. 이런 쓸쓸한 아름다움에 화자는 공감하고 그 비극적 세계를 내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보겠다.
201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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