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갈 길 잃은 꿩 한 마리

등경 2020. 11. 19. 08:11








갈 길 잃은 꿩 한 마리

새벽에 비가 내리다. 새벽기도회에 갔다가 건지산으로 향하다. 비가 내려 우산을 들고 나서다.

동지를 향해 가다 보니 훤했던 이 시간이 컴컴하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더 그렇다.

산보객도 평소에 비해 훨씬 적다. 나는 사람이 덜 왕래하니 좋다. 남 의식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아직 가로등이 꺼지지 않아 가로등 빛에 투영되는 나뭇잎도 보기 좋고 비바람에 나풀거리니 폰에 한컷 담고 싶어 찍다. 막상 찍고 보면 별거 아니게 보인다.

길 바닥엔 많은 잎들이 떨어져 널브러져 있다. 전엔 한켵 깔더니 제법 낙엽이 수북히 쌓였다.

어디는 플라타너스 잎이 단풍나무 잎이 상수리 나무 잎이 나무에 따라 그 바닥엔 같은 종류의 단풍들이 수북히 떨어져 내려 고운 카펫을 색깔별로 깔아 놓다.

산을 다 내려 오니 밭이 보인다. 그런데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만히 보니 큰 수꿩 한 마리가 밭 가랑에 친 망에 부딪히면서 날기를 수없이 하고 있다.

다른 쪽은 바라보지 않고 오직 망을 향해 도망가기를 힘쓰고 있다. 얼른 사진 한장 찍고 잡아서 날려 보내야 겠다고 사진을 찍고 나니 스스로 나갈 구멍을 찾아 뒤뚱뒤뚱 종종 걸어가더니 어느새 날라 가버리다.

다행이다. 살려 주려고 한 사람 만났으니 산 것이다. 혹 흑심을 먹은 사람이 있다면 덮쳐서 잡을 수 있는 처지였다.

푸드득거리는 장끼 한 마리가 눈에 아른거린다.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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