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모처럼의 피서 나들이

등경 2015. 8. 9. 14:14

오늘은 팔월 팔일로 입추다. 절기로는 입추라 하지만 일기예보도 그렇고 실제 느끼기도 삼복중의 한 더위다. 엊그게 지나가는 말로 요근래 여름이면 일년에 한 차례씩 찾는 계곡이 있었는데 주말을 이용해서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내와 딸이 긍정적으로 반응을 한다. 아침 운동으로 덕진체련공원에 가서 테니스 한 게임을 하고 오니 더운 날씨 탓인지 힘들다. 집에 오니 아내가 뭔가를 준비한다. 눈치로도 피서를 위해 나갈 채비를 한다. 버너와 몇 개의 바구니에 올망졸망 통과 그릇을 채워넣는다. 열시쯤 집을 나섰고 인근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완주 IC에 들어서다.

요근래 날씨는 무섭다. 그렇게 더위를 타는 것은 아닌데도 밤이 되면 잠이 들려나 걱정이 앞선다. 낮엔 사무실에 나가서 시원하게 보내고 저녁때 집에 오면 거실이 후끈거린다. 하루 종일 집을 지킨 아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미안할 정도다. 대구가 섭씨 40도 가까이 온도가 오른다고 하고 다른 지역도 경쟁적으로 온도계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에지간한 일로 외출하기가 싫다.

난 방학이긴 하지만 날마다 학교에 나가다. 딸이 집에 온지도 벌써 보름이 넘다. 공부하느라고 지친 심신인데 가까운 곳이라도 외출해 본적이 없다. 미안하기도 하다. 개학이 되어 곧 바로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고 시험치느라고 정신없는 세월을 보낼 딸아이다. 딸과 함께 피서를 가고 싶어서 더더욱 가자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딸은 마지막 집에서 편하게 쉬다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성 싶다. 아빠가 가자고 하니까 나선지도 모른다. 내가 딸을 위해 밖에 나가자고 한 것이 딸이 나를 위해 나설수도 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는 그리 많지 않다. 장수로 가는 고속도로는 통행량이 원래 많지 않다. 계남 IC를 빠져 나와 지지계곡으로 가다. 고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가니 차가 도로에 수십대가 주차를 하고 있다. 이곳이라는 생각에 차를 파킹하고 내려서다. 전엔 계곡에 쉽게 내려가는 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려가는 길이 험하다. 이미 계곡엔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다.

계곡에 들어서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지난 주 토요일은 교회 남전도회에서 완주 어느 마을로 야유회를 가다. 그동안은 여름철 나들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회장을 하는 시기에 공교롭게 회원 중 어느 분이 자기 집 근처에 다리 밑이 있는데 시원하다고 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지난 토요일은 다리 밑에서 하루를 보내다. 다리 밑에 불어 오는 바람은 시원하기도 하지만 텁텁한 바람에 그리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햇빛은 피했다 하지만 집에 오니 운동으로 탄 얼굴이 더 까맣게 탄 나의 모습을 보다. 그런데 이곳은 계곡으로 들어가자 상쾌한 바람이 불고 발을 담그니 시원하다. 마침 적당히 쉴 자리도 있다.

짐을 풀고 잠깐 쉬니 12시가 가깝다. 삼겹살을 구워먹다. 맛있게 먹다. 곧 이어 라면도 끓여먹다. 우리 아래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이미 고기를 구워먹고 통닭바베큐를 준비하다. 물놀이용 의자도 준비해가지고 오다. 많은 것을 준비한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좋아 보이질 않다. 바베큐를 한다고 숯불을 피워 매캐한 연기를 피워내니 계곡의 공기가 썩 좋칠 않다. 놀러 왔던 사람들의 양심도 눈에 띤다. 마치 정상적인 수박으로 물속에 담궈 놓은 줄 알았더니 그 속에다 쓰레기를 담아 버리고 간 사람들도 있다. 요근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놀러갔을 텐데 나쁜 양심으로 피서지를 어지럽히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비치기도 하다. 나만 아는 이기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피서는 지양했으면 한다.

 

2시가 넘은 시간이다. 배가 부르고 아내와 딸은 잠깐 자리를 비우다. 비가 한 두방울 떨어진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오다. 비가 오니 피하라는 말을 하다. 그땐 그게 별거냐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다. 좀 있으니 비가 세차게 온다. 겁이 나다. 가져온 물건이 젖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서 주섬주섬 챙겨서 차에다 갖다 놓을 요량으로 깊은 생각없이 대충 배낭 둘 버너, 그릇들을 손에 들고 계곡을 빠져 나가다. 거의 다 올라와서 힘에 부쳤든지 흙길에 미끄러지다. 어렵사리 올라가서 트렁크에 비젖은 짐을 실어놓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오다. 남은 물건을 들고 다시 차에 오르다. 벌써 옷은 다 젖어서 차에 들어갈 수가 없다. 고스란히 비를 맞고 아내와 딸을 기다리다.

 

비가 그친 거 같아 준비해온 옷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오다. 햇볕에 달궈진 도로에 비가 내리니 훈김이 많이 나다. 집에 비교적 일찍 돌아오게 되었고 물건을 나르다 생채기가 난 곳에 약을 바르면서 위험한 피서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 비에 젖은 피서를 생각해보니까 우습기도 하다. 기억에 오래 남을 입추날 희한한 피서를 갔다 온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

 

2015.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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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어제 일을 회상하면서 적어본다. 그동안 집에 있었던 딸아이는 부산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가고 있는 중이다. 잘 도착해서 힘든 공부 잘 이겨내길 기도한다.

 

201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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