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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념의 기_김남조

등경 2015. 1. 3. 18:38

(10) 김남조의 "정념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결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이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한 폭의 '기(旗)'에 비유하고 있다. 내용으로 볼 때 화자인 '나'는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견딜 수 없어 차분이 눈길을 걸으며 '뉘우침'과 '비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끝내 벗어날 길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인간의 굴레 때문에 그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시공'속에서 혼자 '울고 때로 기도'할 수밖에 없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몸부림일 터이다. 그러나 화자의 이 괴로움을 보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5연의 내용으로 보아 화자의 심적 갈등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이 없음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벗이 많이 있어도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막막할까. 이 막막한 심정이 허공에 걸린 깃발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은유
보는 없는 시공에
없는 모양 걸려 왔더니라.
고독한 자아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 이기지 못해
갈등 고뇌 정열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번민하는 자아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평온을 되찾은 자아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
후회 없는 하루
고요히 꽃잎인 쌓여가는
일이란다.
후회없는(순수한) 삶의 열망

황제의 항서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순수한 벗의 기원(초월적 존재)
없을까.
순수한 벗의 소망

마음은
폭의
보는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인간적 모습
때로 기도드린다.
무엇을 위해
울고 기도드리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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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이 밝았다. 올해 처음 만난 시는 김남조 시인이다. 교감샘이 추천한 시 가운데 먼저 정념이 기라는 시를 외우기로 맘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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