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작은 행복

등경 2023. 12. 22. 13:45

작은 행복
 
1. 목욕
점심을 먹고 갑자기 목욕탕을 가고 싶다. 목욕탕이라는 단어는 내 머리에서 4년간은 지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발생한 이래 단 한번도 목욕탕을 가본 적이 없다. 왜 갑자기 목욕탕이 생각났을까. 목욕탕은 가지 않았어도 아침 산행후 매일 샤워는 했다.
발 뒤꿈치가 각질이 생겨 딱딱하더니 조금씩 갈라지면서 어떤 때는 좀 아프다. 그렇다고 발관리를 전혀 안한 것도 아니다. 매일 만보 이상 걷고 이전 몇달 간은 맨발걷기도 했다. 그게 화근이다. 맨발 걷기를 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발바닥이 딱딱해지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점심 때라 사람이 적을 거라 생각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나선 것이다. 간단한 소지품을 넣을 가방을 찾으려니 전에 목욕탕에 갈 때 가지고 다닌 것이 있어 뒷베란다에서 가지고 나오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자크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책장에 있은 초로 문질러 사용하다.
밖엘 나오니 날씨가 매섭다. 이번 주는 한파가 몰려와 춥기도 하고 눈도 많이 내렸다. 해안가는 눈이 무릎까지 쌓이기도 하고 도로에서 차 사고도 많아서 TV에 사고 광경이 많이 보도된다.
목욕비가 얼만지 몰라서 나올 때 만원 지폐 한장을 들고 나오다. 목욕탕을 들어서니 목욕비는 9천원이다. 전에 오육천원할 때 다닌 것이 생각이 나 많이 올랐다 했다. 생각해보니 차도 오육천원인데 차는 컵에 한잔 마시는 것이고 목욕은 나혼자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탕에 가득 물이 있는 거 아닌가 하고 달리 마음먹어 보다.
목욕탕을 가지 않는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내 머리속엔 가서는 안 될 곳으로 입력이 되었다. 나는 괜찮지만 나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입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목욕탕에 한번도 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평일 점심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다. 발뒤꿈치 뚝살을 좀 벗기도 싶어서 왔으니까 아무래도 탕에 오래 들어가 몸을 잠궜다. 날씨도 춥고 보니 탕속에서 가만히 명상에 잠기니 몸이 풀리면서 뭐라 이름짓지 못할 좋은 기분이 몰려온다. 이름하여 이것도 작은 행복으로 부르고 싶다.
다른 때는 목욕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이번에는 약 이십분 탕속에 있으려 했고 나와서 간단히 때를 밀고 다시 탕속으로 들어가다. 여러 차례 발을 목욕탕에 놓은 돌에 문질러 보다. 많이 좋아진 거 같다.
목욕탕에 가끔 다녔다면 모처럼의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약 한 시간 따뜻한 탕속에 있으면서 목욕탕에서 이런 기분도 느끼는 거 같아 목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을 보내본다.
2023.12.21 목요일 오후
 
2. 모자
새벽 교회를 다녀와서 바로 건지산으로 향하다. 조금 지체하면 나가기가 싫다. 어제는 건지산을 못갔다. 너무 추워서다. 새벽에 산에 가는 것을 빠뜨린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젠 너무 추워 일부러 안가다.
나가면서 평소와 같이 해도 되는데 오늘은 더 추우니까 뭐 하나를 더하고 싶었다. 추울때를 대비해서 방한품을 사려고 여런 군데를 다니기도 했다. 지난번 딸이 모자 하나를 사주기도 했다. 사가지고만 왔지 안썼다.
겨울이 되면 추울 때 장갑, 귀마개, 목보호대, 모자 등을 이용한다. 나는 장갑도 있고 귀마개도 있고 목보호대도 사용한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자다. 나는 모자를 이용하지 않는다. 두상도 적어서 모자가 어울리지 않고 적당한 모자를 본 적이 없다. 내 서재에는 모자는 많이 있으나 제대로 쓰고 다녀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래서 모자를 멀리 하기도 했다.
오늘은 너무 추우니 뭐라도 쓰고 싶었다. 소파 위에 던져진 모자 하나가 눈에 띠다. 천이 부드럽고 보기도 싫지 않다.
집을 나서다. 날씨가 추우니 걷는 사람도 적다. 어쩌다 한 두사람 눈에 띤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무모하다. 평소 운동을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도 자제할 수 없어 나오다.
걷기도 하지만 걸으면서 하는 일이 있다. 무얼 듣거나 외기도 한다. 걸으면서 외우면 더 잘 외워진다. 요즘은 중국어를 외운다. 이번 2학기 중국어 4 복습을 하기로 마음먹고 교과서 본문을 외우고 있다. 사람들이 적어 큰 소리로 중얼거리고 산을 걷다.
오늘은 추웠는데 모자 하나 더 쌌는데 추위를 느끼지 못하겠다. 걸으면서 진즉 쓸 걸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모자를 썼는데 따뜻했다고 자랑을 하다. 오늘은 모자 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2023. 12. 23 금요일 새벽
 
3. 팥죽
오늘은 동지다. 동짓날은 팥죽을 먹는다. 예전엔 동짓날은 팥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그런 것도 희미해져 젊은이는 동짓날 팥죽을 먹는지 관심도 없다.
점심은 팥죽이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은 기대를 하겠지만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도 안했다. 맹자 방송을 듣고 식탁으로 나오니 팥죽 한 그릇이 놓여있다.
먹어 보니 맛있다. 생각 나름이다. 평소 나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서 분식이고 팥죽이고 먹기 전에 시큰둥했던 나의 과거가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지 못하도록 했던 거 같다.
음식도 맛있게 먹는 것이 행복이다.
올 한해도 저물어 간다. 열흘도 채 남질 않았다. 잘 마무리하자. 오는 새해가 기대된다.
2023.12.23 금요일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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