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이별 연습

등경 2014. 2. 17. 10:07

새벽 예배를 다녀와서 딸아이 방문을 열다. 다른 때 같으면 딸아이가 자고 있으려니 했지만 오늘은 아니다. 방문을 여니 방은 치워져있다. 책상위를 보니 노트 쪽지가 있다. 펼쳐보니 지 엄마와 나에게 쓴 편지다. 편지를 읽노라니 가슴이 뭉클하다. 안방으로 건너와 집 사람과 이야기하다 눈물을 쏟다. 잘 우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온다. 아빠로서 잔 정도 제대로 주지 않고 키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제는 주일이다. 아침부터 서두르다. 다른 때 같으면 아주 특별한 일 없으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예배를 드리기에 거의 나가는 일이 없다. 어젠 특별해서 서둘러 9시 1부 예배를 드리고 부산갈 채비를 하다. 이유인즉 딸이 포항에 있는 한동대를 졸업하고 뜻한 바가 있어 서울대행정대학원에 진학해서 서울서 3년 보내다가 또 다시 부산 한의전 입학을 위해 오늘 기숙사 입사를 하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전공을 바꾸는 것에 평소 좀 못마땅해한 것이 사실이다. 구르는 돌에 이끼끼지 않는다고 귀에 못이 지도록 잔소리를 해오던 터이다. 이번 부산 가는 것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는 않았다. 몰래 시험보고 지 엄마와 있는 자리에서 혼날 일을 한 것처럼 나에게도 어렵게 부산대 한의전을 가겠노라고 했을 때도 꾸중들을 일을 한것처럼 각오하고 나에게 한의전 운을 떼기도 했다. 허나 딸의 생각이 그 길이라면 어쩔수 없다고 해서 집에 잠깐 내려와 쉬다가 드디어 짐을 싸들고 부산을 가게 된 것이다.

1부 예배를 서둘러 드리고 집에 오다. 많은 짐 박스를 싣기 위해 지 오빠와 나르기 시작하다. 짐이 많아서 엄두가 나질 않다. 트렁크가 큰 편이라 생각해서 실리리라 생각한 박스가 들어가질 않다. 두 박스 싣고 나니 실을 곳이 없다. 큰 박스는 하나 그대로 남아 있고 작은 짐들도 많이 있었는데.. 아들 녀석은 나보다 더 불만이다. 짐을 나르면서도 투덜댄다. 나도 덩달아 한마디하다. 작은 차는 아니기에 공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짐으로 모든 식구들이 포위되다. 이곳 저곳에 쑤셔 넣어 대충 짐을 넣고 차에 오르니 11시가 넘다.

초행이라 네비에 목적지를 찍다. 부산대 양산 캠퍼스 했더니 양산 캠퍼스 역이 뜬다. 기숙사하라고 해서 기숙사를 쳐보니 그 곳은 아니 나온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네비를 별로 쓰질 않았는데 이런 곳은 네비 아니고는 갈 수가 없다. 완주 IC로 들어가니 대구 가는 쪽으로 네비가 안내한다. 그동안 장모님이 대구에 계셔서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통해 88을 거쳐 대구는 비교적 많이 다녀봤는데 함양 휴게소를 지나니 진주쪽으로 안내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지나 남해안 고속 국도를 가다 오후 1시가 되어 함안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 점심을 라면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다. 양산 캠퍼스에 도착하니 3시가 넘다.

기숙사 입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차에 짐을 싣고 내리고 끌고 한다. 배정된 방 키를 가지고 와서 짐을 올려다 주니 3시 50분 오리엔테이션이 잡혀 있다고 해서 짐만 대충 넣어 주고는 한의전 건물로 들어가 짧게 둘러보고 나오다. 작별 인사를 하다. 지 엄마가 안긴 딸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한다.

대학 들어갈 때도 짐을 싣고 포항엘 갔고 서울대행정대학원을 다닌다고 했을 때도  서울을 갔었다. 오늘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차에 많은 짐을 싣고 딸아이 진학을 위해 이곳을 오면서 떠오르는 말이 이별 연습이다. 언젠가는 학업을 마치고 결혼을 할 텐데 시집가기 전 작은 이별 연습을 하면서 그때를 위해 미리 연습을 해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는 길에 내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니 집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다르다고 한다. 다를 TV를 보니 요즘은 사위들이 딸이 친정 엄마와 좋게 지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면서 옛날에는 시집간다고 서운해 했지만 요즘 딸들이 시집을 가도 옛날처럼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고 보니 다들 이렇게 평소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거 같지만 마음 구석에 그런 자식들이 크게 자리함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게 부모의 입장에서 귀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부모와 자식!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다. 귀한 인연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부모는 자식을 귀하게 생각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건전한 가정되기를 소망한다.

 

올 땐 진영 휴게소에 들러서 볼 일을 보다. 매점엘 가니 핸디북이 놓여 있는데 책 제목이 맘에 든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는 책이다. 올 입학식 때 귀한 신입생이 들어올텐데 전하고 싶은 내용이다. 학년말 읽을 책들이 많다. 혼불도 읽길 시작했으니 읽어야 하고 이 작은 책은 간단하게 읽히리라 본다. 무거운 짐을 싣고 가던 길과는 오는 길은 가볍긴 하지만 먼 부산 땅에 데려다 주고 오는 맘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공부 그만하고 즐겁게 살라고 평소 가끔 입버릇처럼 딸 아이에게 한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허지만 어려운 길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길이라면 열심히 하여 허준의 후예가 되어주길 빌어본다. 민정아 화이팅! 사랑한다. 딸아

 

201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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