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학이시습당

마지막 시험

등경 2021. 12. 10. 21:03



마지막 시험

사람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날들이  있다.  어떤 일이 시작되는 날이거나  끝나는 날이든지 또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들이  그런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언젠가는 뱐드시 온다. 요즘 나의  경우에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오늘이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중  마지막 날 이다. 이번 주는  기말고사 기간이다. 월요일부터  시작했으니 세 과목을  보고 오늘이  마지막 시험이다.

이번  시험은  마지막이라  정말 열심히 해서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체면치레나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지금까지는 그 기대가  바닥에  떨어지다.

엊그제 아내와 딸이  통화하다가 나보고 딸이 '아빠  대충 봐'라고 했는데  대충 보는 정도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시험지만 봤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은 예상문제가 어느 정도 적중하는데 철저하게 모두 외면하여 하나도 맞은 적이 없다. 해보려고 해도  이젠 머리가  따라 주질 않는다. 직전에 본 것도 기억못하니 답답하다. 나이들어  공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른 저녁을 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교육원에 도착하다. 시험 보기 전 교육원 마당에서 2학년때 시경을 강의해주신 교수님을 뵈었는데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주신다.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시험이고 실질적으로 오늘 마무리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지난 주 주역 마지막 수업에서도 교수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다. 지금도 교수님은 고전 정신세계를 매일 책을 통해 누비는데 새벽 한 두시간씩 주자서절요와 퇴계 저서를 보신다고 하시면서 세속에 물들지말고  부박하고 비루한 세속에서 벗어나 삶을 아름답게 살라고 주문하신다. 日新 又日新하고 반복해서  책을 보는게 중요하다고 하신다. 尙友라는 말이 있는데 尙은 上의 뜻이 있어 위로 올라가 벗한다고 한다. 맹자는 동네  사람들괴 나라와 천하와 옛사람과 벗했다. 책을 통해 맹자를 만나고 공자를 만나고 퇴계를 만나고 동서고금의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보자.

시험을 보고 나서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그냥 집으로 향하고 싶지 않다. 홍지서림을 들르다. 오늘 춘추좌전 시험이 있었는데 天 권만 배웠기에 이어서 스터디를 하든 독학을 하든 地권 人권도 읽으라고 권하셔서 책방을 들러 번역본을 구입하려 했는데 3권 만 빠져 주문을 해놓고 두 권을 사들고 시내버스에 오르다. 사지 않으면 마음 속에 품었던 것이 흐려질 거 같아서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지각 결석없이 빠지지 않았다. 방학이면 특강에도 참여 했다. 1학년 때는 인근 도서관도 열심히 다녔다. 코로나 터지고 갈래야 갈 수도 없었지만. 2년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이 갇힌 상태예서 우리 동양 고전의 세계에서 노닐었던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가 도와주고 딸이 학비를 대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건강주셔서 다닐 수 있어 감사하고 그동안 별일 없어서 감사했고 마음껏 공부에 매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졸업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 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기에 가능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감사한다.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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