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명언 수업의 명언
이성구 편저, 에디터
2011. 4. 8~
1.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만물을 만드는 자의 손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한데,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면 모든 것이 나빠진다. -루소-
어린이를 선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는 부모나 교사, 또는 어린이의 좋은 면을 볼 수 있는 부모나 교사 쪽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다.
루소는 사회나 문명에 의해 변용되기 이전의 인간의 본성에 절대적이고 큰 신뢰를 보내, 거기에서 자발성의 중시, 개성 존중, 점진주의, 전인교육 등의 원리를 이끌어 내, 후세의 교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밀에서>
사람은 왕좌에 앉아 있거나 나뭇잎 지붕 아래 살아도 같은 인간이다. 본질로 본 인간,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페스탈로찌-
자연 속에서 일하고,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활 - 그 속에 인간의 본질은 있다.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생활- 그 속에 인간의 모든 것이 있고, 이런 생활이 인간을 도야한다.
나는 본보기라는 것을 심히 중요시한다. -도산 안창호-
교육은 아이들에게 학문과, 좋은 버릇을 동시에 부여하기 위해, 어른의 사회에서 아아들을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아리에스-
누구나 처음에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있는 어른은 별로 없다. -생 떽쥐베리-
인간은 문자 그대로 완전한 뜻에서 인간일 때에만 놀 수 있고, 또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다. -실러-
실러에게 있어서 놀이는 시간보내기나 낭비이기는커녕 인간 최고의,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놀이는 내면적인 것의 자주적인 표출, 내면적인 것 그 자체의 표출 바로 그것이다. -프뢰벨-
교육이란,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를 규격에 맞춰 잘라 줄이는 것이다. -로슈포르-
모든 인습과 미신, 위선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교육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닐-
32쪽 ~ 33쪽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선악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은 없다. -닐-
한 때 교내폭력이 크게 말썽이 되어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매스컴에서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인 문제로 크게 번지지 않아 그렇지, 언제나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문제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면역이 되어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말썽의 소지가 실제로 줄어든 것일까.
폭력사건이 줄어들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방향으로 잘 나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전보다 즐거운 웃음소리로 넘치는 줄거운 곳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닌, 오히려 학생들을 윽박지르고 눌러 버린 것은 아닐까. 이러한 결과가 의뭉스럽게 못 살게 구는 탓이 아닐까.
억압적인 대책과 교묘한 조작은 오히려 문제를 음침하면서도 뿌리 깊은 문제로 만들 위험성이 더 크다. 이러한 모양으로 이른바 「관리」 가 한층 더 강화되면, 그 다음으로 나타날 것은 발광이나 자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발적인 권위에의 예속, 그것은 억압에 대한 변형된 반발일 수도 있지만, 권위에의 예속의 길을 갈지도 모른다.
오늘날 이른바 관리주의 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까닭으로 여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닐은 반세기 이상의 세월에 걸쳐 아무도 해보지 못한 대담한 자유교육의 시범을 계속해 왔다. 그가 관리교육에 반대해 온 것은 이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해 온 것이다.
『인생에 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 내지 못한 내게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과 같은 일이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있는 한 옆에 서서 아이가 안으로부터 발달하는 자유를 도와주는 것 뿐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디로 행해 나아갈 것인지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의 발길을 이끌려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권위를 버리자-하는 내 지론의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자가 제 멋대로인 우리 인간들은 우리에게 봉사시키려고 말을 때리거나 길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때리거나 길을 들이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이들은 우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목표를 행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닐도 젊었을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매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언젠가 내가 이 아이보다 인간으로서 나은 것일까 하는 자기 의문에 부닥쳤다. 이것이 그가 매를 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선생이 우줄한 생각을 버리고 마음 속 밑바닥으로부터 겸허해질 때 아이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솟는다.
이렇게 해서 닐은 어른 쪽에서 강요하기를 버리고, 자기의 학교를 아이들이 공동생활을 통해 스스로의 도덕을 만들어 나가는 자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이를 잘못 가르친다고 해서 관리교육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은 「과잉 관리」에는 반대를 해도, 「그저 그런 관리」에는 불만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정서장애를 고친다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버릇을 고친다고 매를 들거나 극기훈련을 한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지나치지만, 그저 무리를 하지 않는 「관리」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괜찮다고 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관리교육은 절대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절규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러한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좀처럼 눈에 띄는 자유교육의 성과가 오르지 않을 경우 초조해져 갑자기 태도를 바꿔 「관리」의 필요성을 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들 나름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는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관찰의 교육학적인 방법은 아이의 자유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유란 활동성이다. -몬테소리-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 -워즈워드-
낳은 지 오 년 동안에 걸친 심리적인 성장은 대단하다, 그 범위나, 그 속도에서 이토록 두르러지게 변화하는 시기는 평생에 두 번 다시 없다. -게젤-
아이들의 마음은 시냇물과 같아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쉽게 바꿀 수가 있다. -로크-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네카-
교육은 경험의 재구성, 또는 재조직이다. -듀이-
아이들은 아이들의 현재를 존중해 주면 놀라울 정도의 지적인 호기심을 갖고 공부한다.
2.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생각한다
농부처럼 일하면서 철학자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3. 사랑은 사람을 키운다
교사는 성직자도, 전문가도 아니고, 사실은 서비스업이다. -나도리 히로부미-
교사는 성직자일까. 노동자일까, 그렇지 않으면 짖거 전문가일까. 이러한 질문은 어느 때는 반농담으로, 또 어느 때는 진담으로도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전교조문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비롯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는 가장 중요한 시각의 문제가 빠져 있다. 즉 이 문제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닐의 학교 서머힐에서는 수업 시간표대로 이루어지지만, 수업에 출석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사에 맡겨져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몇 해를 출석하지 않아도 야단맞거나, 강제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들의 결석률이 다른 학교 아이들보다 높으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선생이 혹시 늦어지는 경우라도 생기면, 아이들이 찾아가 팔을 잡고 모셔갈 지경이다. 학력 또한 학력검정시험에서 공립학교 학생들보다도 훨씬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아이들은 강제하지 않으면 공부를 안한다는 생각은 미신이다. 음식이 맛도 없으면서 값만 비싸고 서비스 또한 나쁜 레스토랑이라면 손님이 몰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권위만 휘두르면서 잘못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면, 아이들은 몰리지 않는다. 서머힐 같은 학교에서 교실이 텅 비었다고 하면 그것은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교사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보통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침착하지 못한 학생은 대개의 경우 성격이나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는 아이로 취급된다. 담임교사가 보호자와의 개인면담에서 가장 많이 주문하게 되는 것이 『댁의 자제는 수업시간에 침착성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나 교사가, 소란스러워지는 원인을 무조건 아이들이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사실은 학교나 교사 쪽에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된 환경조건이 어디에서 생긴 것이든
공부를 잘할 수 있게, 그것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서비스」해 주어야 하는 것이 학교나 교사가 해야 할 또 다른 한면의 서비스이다.
<「재미있는 학교」에서>
가장 좋은 교사란 아이들과 함께 웃는 교사이다. 가장 좋지 못한 교사란 아이들을 우습게 보는 교사이다. -닐-
선생님 여러분, 여러분의 일은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일은 사회에 있는 것입니다. -닐-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것은 큰 변혁의 힘이다. -체르노코죠아부처-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는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교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교사는 아무리 입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사실은 아이들을 경멸하고 있는 교사이다.
교사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사랑하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과를 사랑하고, 선생의 신념이나 이상을 사랑하며, 나아가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힘쓴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교사는 이 아이들을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그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한다. 이것이 교육자의 사랑이다.
아이들을 경멸하고 있으면서 보신을 위해 아이들에게 영합하는 것도 마다않는 교사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얼핏 보기에 아이들 입장에 서 있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이들을 속이는 내용이 되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그들의 생활현실을 보다 좋은 것으로 바꿔가는 사명을 자각시켜, 세계를 개혁하는 것에 관해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라고 소련의 교육연구자 체르노코죠아부처는주장한다.
부모란 교사에 대해 최고의 요구를 내놓는다.
사랑은 사랑을 키우고, 미움은 미움을 키운다. -닐-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문제아동이란 절대로 없다.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부모뿐이다. -닐-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고, 배운다는 것은 성실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 아라공-
곤란한 아이란 사실은 불행한 아이이다. 그는 마음 속으로 싸우고 있다. 그 결과 외계를 향해서도 싸운다. -닐-
골치아픈 아이란 것은 결코 「나쁜 아이」는 아니다. 오히려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본인도 느끼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가엾는 아이」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는 벌을 주거나 엄격하게 설교하거나 하지 말고, 그 내면의 문제를 찾아 그것으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어야 한다.
자연이 너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네 앞길을 막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랑의 폭이다. -페스탈로치-
길 가의 도랑폭 -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랑폭
4. 어린이들을 밝은 세상에 내보내라
5.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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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명언 수업의 명언 중에서 마음에 드는 내용을 조금 적어 내려 놓은 것이다. 11년 4월에 읽은 내용의 글이다. 독서 코너를 만들어 놓고 아무런 내용을 담아 놓지 않아서 일단 이 내용부터 옮기기로 한다.
2013.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