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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예수의 길을 걷다

등경 2018. 11. 27. 08:29


[오늘의 설교] 예수의 길을 걷다

마태복음 7장 13∼14절
입력 : 2018-11-27 00:02


[오늘의 설교] 예수의 길을 걷다 기사의 사진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복 있는 자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산상설교도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즉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자가 되거라’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끝맺음 됩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한 합일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중심 범위 안에서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 우리는 예수님의 강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해 아무 쓸모없이 내쳐지는 상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좁은 문과 친밀한 줄 알았지만 예수 앞에 섰을 때 ‘나는 네가 도무지 나의 길을 걸어왔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이십니다. 왜냐하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곧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사랑, 섬김과 순종, 정직과 공의의 길로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 욕심과 생각 등을 버리고, 하나님 뜻을 구하며, 내 유익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추구하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녹록지 않은 여정입니다.

반대로 넓은 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자기 뜻대로 쾌락과 욕망을 추구하기에 편하고 화려해 보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욜로(YOLO)’처럼 내가 중심이 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늘의 보화를 쌓는 길이 아닌, 땅에 보화를 쌓는 길이 더 풍족해 보입니다. 사랑의 길이 아닌, 미움과 다툼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더 쉬워 보입니다. 정직의 길이 아닌, 부정과 거짓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더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거나 시험에 들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언급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좁은 길을 걸어갔던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단어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입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한 번의 삶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불투명한 신앙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Yes, No’에 대한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을 사는 이유를 가진 자는 인생의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내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켜야 하기에 아픔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이 길로 나아간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늘 곁에서 응원하시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혼탁한 세상입니다.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입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예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회복이 한국교회와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임모세 목사(전주 만성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8091&code=23111515&sid1=f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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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