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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열매보다 밭이 먼저

등경 2018. 11. 29. 06:29


오늘의 설교] 열매보다 밭이 먼저

마태복음 13장 1∼9절
입력 : 2018-11-29 00:02
[오늘의 설교] 열매보다 밭이 먼저 기사의 사진

[오늘의 설교] 열매보다 밭이 먼저 기사의 사진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씨앗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렸지만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농부는 왜 씨앗을 뿌렸지만 수확을 하지 못했을까요. 씨앗이 돌밭과 길가에 뿌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전적으로 농부의 잘못입니다. 경험 많은 농부는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농부는 돌밭을 개간하고 가시덤불도 제거한 후에 불모지도 비옥한 밭으로 만들어 냅니다. 본문의 농부는 귀찮기 때문에 그냥 돌밭과 가시덤불을 개간하지 않고 씨만 뿌렸습니다. 씨앗은 문제가 없습니다. 땅을 개간하지 않고 그대로 씨를 뿌린 게으른 농부가 한 해 농사를 망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농부라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까요. 건강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 위해서는 밭을 개간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씨앗은 그 뒤에 뿌려도 늦지 않습니다. 잘 개간된 땅에서 자란 씨앗은 잘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역시 좋은 열매는 좋은 밭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보다 밭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선한 열매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선한 밭을 찾기도 힘듭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학생들이 빗자루로 교사를 폭행해 퇴학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든 ‘농부’는 누구였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씨를 뿌린 농부들은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어른들입니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문화를 배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선생님을 공경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을 폭행한 학생들을 당장 학교에서 내쫓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잘못은 아이들이 저질렀으니 포기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부터 어떻게 교육해야 안타까운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도 좋은 밭과 좋은 씨를 가꿔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130년 전 처음 이 땅을 밟은 선교사님들은 돌과 가시로 가득 찬 이 땅에 희생과 사랑으로 순교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 밭에서 키워진 씨앗들은 부흥의 역사를 이뤄냈습니다. 세계 곳곳에 다시 복음을 전하는 열매들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세속주의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함께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복적인 기도와 세속의 기준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성도 수에 집착하는 외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씨를 뿌려야 할 토양은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에 커 보이는 열매에만 집중하다가 가시덤불과 돌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정신도, 교회의 정신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농부가 돼야 합니다.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돌이 가득한 이 사회를 복음의 힘으로 개간해야 합니다. 교회의 건강을 해치는 기복신앙과 같은 풍습을 극복할 궁리를 해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셨던 것처럼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아름다운 교회를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그제야 복음은 아름답게 세상에 흘러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보다는 성도 한 사람이 교회인 우리의 삶을 비옥하게 합시다. 이 땅에 푸르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계절을 가져와 풍요로운 수확의 기쁨을 누립시다. 우리 모두가 건강한 밭이 되기를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유겸 목사(서울 두드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9710&code=23111515&sid1=f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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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