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믿음 생활

오늘의 말씀-0722

등경 2017. 7. 22. 09:24

2017년 07월 21일(금) 오늘의 말씀

 

하나님 말씀 : 민수기 18장 21절~ 18장 32절

제목 : 성막에서 일한 이들의 보수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 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해설

하나님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의 일에 대한 보수로 주십니다. 그들은 받은 헌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거제로 드린 후에야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서 대신 지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일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막 봉사에 대한 ‘보수’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갚아’주십니다. 회막의 일은 군 복무와 다름없었고(4장 30절),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고린도전서 9장 7절).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주의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십니다(고린도전서 9장 14절). 주를 위해 버린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갚아주십니다.

 

25~32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레위인은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고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받은 헌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고 난 후에야 그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받은 모든 것이 마땅한 권리가 아니라 은혜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보수’로 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받는 것도 은혜이고, 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은혜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4,26,28절 레위 자손을 위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공동체의 책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아’ 레위인들에게 주십니다. 장로들과 말씀 사역자를 위한 경제적 지원 역시 초대 교회에 주어진 공동체적 책임이었습니다(디모데전서 4장 17절). 하나님께서 ‘보수’로 주시는 것을, 받는 이는 ‘은혜’로 여기고 공동체는 ‘책임’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 아닐까요?

 

31,32절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난 다음에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틀의 소출 같이’ 풍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거룩하게 한 부분’만 드리면 나머지는 ‘어디서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계를 받아들이면 풍성해집니다. 성물을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유혹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욕심입니다.

 

기도

공동체-생계유지마저 위협받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보살펴주소서.

열방-유럽 전역에서 수백 명의 무슬림 난민들이 다양한 이유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유럽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무슬림을 향한 선교 사역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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