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졸업, 또 하나의 시작
정년을 맞은지 어느덧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2017년 2월, 나는 고등학교에서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 행정을 마친 뒤 교단을 떠났다. 그때만 해도 다시 시험과 과제 앞에 앉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장으로서 졸업식에 서서 나는 졸업생들에게 “인간은 배우는 존재이니, 끝까지 배우며 살아가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그 말은 학생들에게 건넨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정년 후 소속감 없이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그래서 때로는 존재 자체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한문 공부가 좋아 나는 고전번역교육원에서 3년 연수 과정을 마쳤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중국어 공부를 위해 방송대 중문과에 입학했다. 이제 방송대 중문과 4년 과정을 거의 마치며 또 하나의 졸업을 앞두고 있다. 중간과제와 기말고사에서 부담은 있었지만, 이 길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올해는 집 가까이에 있는 전북도립국악원에서 무엇 하나 배워볼까 오래 망설이다가, 2월말 졸업을 앞두고 시조반에 등록했다. 글로만 접하던 고전을 이제는 소리로, 몸으로 배우려 한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쉽다고 말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영어를 좋아한 나로서는 방송대 영문과에 다시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도 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 시간 공부를 묵묵히 견뎌 준 아내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따라온다. 아내가 싫어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욕심을 내려놓은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배움에 대한 마음과, 함께 살아온 사람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천천히 답을 찾아가고 싶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하나의 학업 과정을 마쳤으니 졸업임은 분명하다. 마음껏 공부하고, 고민하고, 책을 읽고 사색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하나의 묶음으로 남았다. 막상 졸업이라는 문을 나서려니, 허전함이 밀려오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신발끈을 매어 나서려 한다. 다시 오를 언덕이 있고, 다시 만날 산이 있다.
2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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