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일상

익숙한 것과의 이별

등경 2018. 12. 1. 09:33

익숙한 것과의 이별

오늘은 섣달 초하루다. 세월이 참 빠르다. 엊그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무술년을 시작한 것 같은데 열한 달을 보내고 마지막 남은 한 달을 시작하는 초하루다. 오늘은 감회가 남다르다. 새벽예배를 갔다가 건지산을 오르다. 다른 때와 달리 걸음이 느리다. 생각이 깊어져서 인지 모른다. 요즘 고민거리가 있다. 오송지를 지나니 보행 매트가 새로 깔리고 고사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는 안내 간판도 있다.

산길을 걷고 집에 와서 하는 샤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샤워 중 문득 ‘익숙한 것과의 이별’ 이란 단어들이 튀어 나온다. 이제 익숙한 것과 이별을 감히 선언해야 할 시점인지 모른다.

아내와 벌써 닷새째 냉전중이다. 사소한 것 가지고 싸우다가 파국에 이른다더니 내가 그 지경이다. TV를 밤늦게 보는 것으로 발단이 되었다. 내가 참았어야 하는 데 아내의 주장이 얼토당토 않해서 너무 과하게 액션을 취했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데 이제야 후회가 막급하다. 사람이 이성을 잃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더니 내가 그런 일을 했다.

며칠을 지나고 보니 해결책이 보인다. 아!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다.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사 안 것이다. 내가 변할 줄 모르고 남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학 전9장 제가치국장 요순 절지>에서 “君子는 有諸己以後에 求諸人하며 無諸己以後에 非諸人하나니....(군자는 자기 몸에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선을 요구하며, 자기 몸에 악이 없은 뒤에 남의 악을 비난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정말 소인배 같은 생활을 그동안 해왔다. 나도 잘못하면서 남 탓만 하고 살았다.

나는 그동안 모든 것을 아내에 의존했다. 아무 것도 못한다는 핑계로 아내가 가사 생활 100퍼센트를 하는 데 익숙하게 살아왔다. 좀 변한 게 있다면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해주는 정도다. 부부싸움 이후로 며칠 전에는 밥을 했는데 밥솥이 좀 쓰기에 불편한 점은 있는데 밥을 태우고 말았다. 밥솥 하나 쓸줄 몰라 낑낑댔다. 요리는 물론 빨래도 청소도 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나의 생활에도 아내는 불만을 가진 것 같다.

어젠 한옥마을 다녀와서 혼자 점심을 하다. 아내는 일주일 전 오늘 모 권사님 김장하는 데 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거 같다. 어디를 나가려다가 나는 멈추었다. 집이 어지러워졌다. 아내는 딸 방에 들어가 박혀있어 나올 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이 며칠 전 상태 그대로다. 청소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다. 아내에게 속죄하는 맘으로 열심히 청소를 하다. 다짐을 한 게 있다. 금요일 오후는 꼭 집안 청소를 내 손으로 한다는 각오를 다져보다.

집으로 돌아올 때 ‘점포 정리’라는 간판들을 보다. 혹 살 것이 있지 않을 까 싶어 들러 보다. 맨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있다. 장갑이다. 내 손에 맞고 괜찮은 거 같다. 신발도 고르다 좀 싼 것 같기도 해서 내 손으로 장갑도 사고 신발도 사다. 혹 이것도 아내가 알면 뭐라 할 지 모르지만 사고 싶었다. 며칠 후면 유럽을 가는데 아내가 짐을 좀 꾸려주어야 하는 데 정말 난감하다. 유럽 여행에 장갑도 신발도 필요할 것 같아 사게 되다.

이젠 아내의 손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스스로 해야 한다. 밥도 할 줄 알고, 음식도 할 줄 알고, 빨래도 할 줄 알고, 은행 일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뭐가 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퇴직 후 그런 걸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부한답시고 시민강좌 들으러만 쫓아 다녔다. 아침 밥 챙겨주는 것에 익숙했다. 아침 식사는 꼭 했다. 옷도 다려주고 챙겨주는 것에 익숙했다. 나만 먹지 말고 아내가 아프면 내가 끓여주어야 한다.

유치원생들에게만 홀로서기가 아니다. 퇴직한 나에게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려 한다. 나 스스로 하련다. 내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 이게 작심삼일되지 않길 바란다.

2018.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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