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가을 건지산
건지산을 하루에 두번 가는 일은 흔하지 않다. 오늘도 7시 전후해서 1시간 동안 오송지 중심으로 북편 건지산을 걷다. 어제 세찬 비바람에 떨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을 계속 밟으면서 걷다.
다시 오후 세시쯤 등산화를 신고 건지산을 향해 나서다. 요근래 건지산은 근 6개월간 다니던 길만 다녔다.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편백나무숲 속으로 가서 큰 원을 그리면서 멀리 걷고 싶었다.
일단 솔빛중 옆길을 지나 오르막길로 들어서다. 건지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건지산 다니는 것이 익숙하다. 아직은 햇빛이 내리쬐어서 단풍나무도 햇빛에 더 밝아보이기도 하다. 두 시간 을 걷고 나서는 구름에 해도 가려져 회색빛 하늘에 쓸쓸한 건지산으로 변해감을 느끼다.
최명희 묘지가 있는 쪽으로 가다. 이길은 단풍이 좋은 길이다. 그런데 아직 단풍은 들지 않다. 이길을 가더라도 묘지에 오르지 않는데 일부러 올라와 묘지석을 보다.
최명희 작가가 생존해 있을 적에 라디오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최작가는 단어 하나를 사용할 때 몇날 며칠을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달도 걸려 적당한 언어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작가라 여기다. 언어의 연금술사다. 그뒤 타계했고 혼불이라는 책은 영원히 남을 우리 말의 보고 대하소설이 되었다.
도로를 건너 조경단 쪽으로 들어서다. 조경단도 항상 그곳에 있는 전주이씨의 시조묘인 조경단이 있는 정도였다. 그곳도 담너머 안쪽을 기웃거려 보다. 오늘은 걸으면서 건지산 외쪽 전주시가지를 향해 보다.
걸으면서 듣는 대학 강의는 즐거움을 준다. 대학의 문장이 좋아서 외워보다. 외워 보고 또 외워 보다. 한 문장을 외우는 것도 쉽질 않다. 앞을 외우고 나면 뒷 부분 외울 때 다시 앞 부분은 생각이 안난다. 머리가 녹슬어도 너무 슬었다. 그래도 외워 보고싶다. 첨엔 아무 것도 안보였지만 이제는 대충 얼개는 생각난다.
하다 보면 길이 보이리라 본다.
주위를 돌아 보면 다 아름답다.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도 모르지만 찍고 싶은 사물이 있으면 폰에 담아본다. 그냥 찍고 싶다.
두 시간 동안 건지산을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걸었고 대학도 덤으로 듣고 오다. 오면서도 이래 살아도 되는지 나 스스로 물어보다. 겨울이 오면 이렇게 쉽게 건지산으로 나설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