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김영승(1959~ )
/게티이미지
☞시집 ‘반성’은 같은 제목의 시 82편이 수록돼 있다. 시인은 ‘반성 서(序)’에서 이 시편들을 서정시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반성’은 전통적 의미의 서정시와 거리가 있다. 이 계통의 시인으로 김수영이 있는데 그 특징은 비시적(非詩的)인 생활언어를 시어로 과감하게 수용한 데 있다. 그렇긴 하지만 두 시인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김수영의 시정신은 자유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고, 이 자유는 사회비판과 미학을 포함하는 개념인 반면에 김영승 시인은 사회와 역사가 배제된 자유를 거세당한 인간의 자조적 실존의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이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시작품이 되는 이유는 한 걸음 물러나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예컨대 ‘반성608’에서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는 표현이 그렇고, ‘반성99’에서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습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처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가 그렇다.
‘반성’은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보고 뉘우친다는 뜻이다. 김영승의 시는 ‘반성’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반성문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뉘우치는 문구가 단 한 줄도 없다. 그러니까 시인은 애당초 ‘반성’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이란 제목을 큼지막하게 단 이유는, 세상질서에 순응하지 못하는 게 죄가 아닐진대 사사건건(事事件件) 하는 일에 ‘반성’을 강요하는 기성사회 대한 저항을 담은 반어적 표현이다.
박석근 작가·문화비평가
parao1109@naver.com
출처 : 자유일보(https://www.jayupress.com)
202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