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을 읽고
소설 혼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혼불을 제대로 읽은 사람도 많지 않으리라. 내가 그동안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소설인데도 혼불 소설 이야기를 내 주위에서는 이야기의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것을 듣질 못했다. 얼마전 어떤 모임에서 건지산에 소재한 최명희 묘소를 지나면서 어떤 분도 혼불을 제대로 못읽었다고 실토한다.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혼불 소설을화제 삼아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지난 해 2025년 12월 13일 방송대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학과 공부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모든 것에 그렇다. 우연히 내 방 서가 맨 아랫 칸에 고이 모셔둔 혼불 소설책들이 눈에 띠다. '그래 이거다'. 방송대 졸업기념으로 이 겨울에 혼불을 읽음으러 소서 읽기를 함께 하고 싶었다.
책을 꺼내 보니 2005년 발행한 책이다. 그 때 사다 서가에 처박아 두었다. 약 20년간 고이 모셔 두다. 그래도 읽긴 읽었다. 아마 서너권 보다가 포기하고 덮은 것으로 보인다. 책을 보니 몇 권의 책에 좀더 신경쓰는 문장이 나오면 밑줄이 그어져 있다.
전주의 도시 이름을 꽃심 도시라 한다. 나는 어렴풋이 최명희 소설에서 근거하여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고 있어 관심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 나의 할머니는 남원 사매면 매안에서 시집을 오신 분이다. 매안의 이름도 낯설지도 않고 익숙하다. 어렸을 때 두 분의 외종조분도 가끔 뵈었다. 얼마나 점잖으시고 멋지신지 지금 생각하니 그 분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진외가가 남원 사매 매안에 있다.
소설을 읽어 내려 가다 보니 우리 전주 사람은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느끼다. 그리고 나도 장편 소설을 좀 읽긴 했는데 이 소설을 능가할 책이 없는 듯 하여 흥분하면서 읽었다.
아주 오래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차안에서 방송을 들었는데 라디오 방송에 최명희 작가가 출연하여 사회자와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최작가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아마 혼불 소설이 17년간 집필 후에 언론 등에 나오셔서 대담을 하는 입장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소설을 집필하면서 단어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스산한 겨울 해가 질때 그 장면에 마땅한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는데 어떤 경우는 한 달까지 고민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문장을 만들고 작품을 집필한다면 피와 땀으로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도 오래 되어서 이런 기억들이 제대로 맞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저런 경험들이 연결이 되어 그 방송을 들으면서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소설을 읽기 전에 AI에 도음을 구했더니 독서노트를 준비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필사를 해보라 한다. 그러기로 마음먹고 노트에다 써가면서 읽어가다. 그래서 인지 읽는 속도가 느렸다. 나중에는 쓰기가 싫을 정도로 흐지부지 해졌다.
작년(2025년) 탁상 캘린더를 보니 2025년 12월 14일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서 2026년 1월 10일 밤 11반경 마침내 혼불 읽기를 마치다, 눈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더니 밤에 눈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혼불을 마치고 밖에 나가 보니 밤하늘에 눈이 쏟아진다. 마치 소설 속의 '봉천의 밤'을 연상하듯 눈이 내린다. 올 겨울들어 눈다운 눈은 오지 않았다. 혼불 소설은 시기적으로 겨울에 읽는 것이 더 느낌이 살아날 듯 싶다. 큰 일을 치룬 느낌이었다.
책 마지막 장에 유명 인사들의 혼불 평론이 실리다.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는 “『혼불』에는 애처롭도록 가냘프면서 뜨겁고 강인한 우리 민족의 혼이 타오르고 있다. 『혼불』에는 우리 선조들이 모든 일상생활과 의례에 쏟았던 무한한 정성과 기도가 면면히 깃들어 있다. 가혹한 인습의 제약에, 또는 처참한 가난과 억압에 고통받는 형극의 삶 속에서도 인륜의 대소사는 물론, 장(醬)을 한 가지 담거나 연(鳶)을 한 개 접을 때에도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염두에 두었던 그들의 생의 궤적이 가슴을 저민다.
『혼불』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면서 또한 수용과 인내로 역사의 잔인한 파도를 이겨낸 극복의 역사이며, 우리의 갖가지 생활 양식과 규범, 속신(俗信)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수천만 자에 달하는 이 대작(大作)을 단어 한 개, 토씨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찬란하고 영롱한 장편의 서정시로 완성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
이 평론가의 논평으로 나의 혼불독서기로 갈음하고 싶다.
어느 날 불현듯 혼불을 읽고 싶어졌다. 그 때가 작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에 도전했다가 사권째 읽다 말았다. 정독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해가 잘 가니까. 정독을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도 오히려 단축되기도 한다. 앞의 내용이 뒤를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대작의 결말을 알아보려고 첫 권을 잡은 뒤 계속 읽게 되었다.
남원 사매면 매안을 중심으로 전주이씨 양반가와 거멍굴 상놈들을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처음 인물은 청암댁과 이 댁 며느리 대실에서 시집온 효원이가 등장한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나 나중 읽고 보니 끝까지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은 효원임을 알게 되다. 이 소설 속에서 좋아하는 인물을 들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청암댁과 효원을 들고 싶다. 그리고 강호를 시대를 읽어가는 인물로 등장시킨다. 효원의 남편 강모와 강모의 사촌동생 강실이 사촌 형 강태 강모의 첩 오유끼도 계속 이어진다. 상놈으로는 춘복이와 옹구네, 공배네 등이다. 청상과부로 매안 이씨 종가를 일으킨 청암댁의 대쪽 같고 사리가 분별한 처신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강모의 처로 대실로 시집와서 남편 때문에 가슴앓이만 한 효원이가 나는 내심 남편과 화해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이었으면 하는 심정도 있었으나 그리하면 소설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제일 안타깝고 애석한 인물이 있다면 강실이다. 양반댁 규수로 태어나서 흙탕물을 뒤집어 쓴 사촌동생 강실이다. 강모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서로 연정을 품고 살다 비극을 잉태한 강모와 강실이의 관계도 작가가 그렇게 애절하게 만들어 간거 아닌가 싶다. 그 당시는 반상의 차별이 분명한데 작가는 반상차별을 그리면서 춘복과 관계가 맺어지게 했는지 아쉽기만 했다. 혼불을 읽으면서 둘 사이가 어떤 결말을 맺어질지에 대해 많이 궁금했다. 이렇게 맺어져도 되나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도 많은 내용이 할애되어 전개된다.
작가는 둘 사이를 독자의 상상 속에 맡기는 것 같다. 강실이가 벤 아이가 그 씨가 강모인지 춘복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
강호는 일본 유학을 갔다 온 처지여서 시대의 변화를 잘 알고 있다. 덕석말이를 당한 춘복이와 만호네를 찾아가 위로 해주는 모습도 담기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남원 사매와 전주다. 나는 전주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주에 대한 역사는 잘 모른다. 이 소설에서 전주와 남원 그리고 전라북도 지방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땅은 옛날 후백제의 땅이다. 삼국시대의 역사도 많이 서술하고 있다. 전주가 꽃심도시다. 꽃심이 무슨 말인지 이제 나는 알거 같다. 전에 한옥마을에 한국고전번역원 전주분원이 있다. 나는 시민강좌 한시를 배우고 있다. 그 강사가 꽃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왜 전주가 꽃심을 쓰는지 모르겠다.' 하여 그 의견에 잠시 동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혼불을 읽어 보고 나는 전주가 꽃심 도시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의 할머니는 사매 매안에서 시집온 전주이씨 이수주다. 사매가 진외가다. 혼불을 읽노라니 나와도 많은 관련이 있는 소설임을 알다.
시대 배경은 일제 강점기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한 만행이 곳곳에 담겨있다. 수탈하고 창씨 개명하는 등 우리 민족의 혼을 불살라 버리듯 한 일제 만행을 고발한다. 소설 속에 송장을 뜯어먹는 개떼가 시체를 빨아먹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 개떼가 일제다.
소설에는 절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불교에 대한 교리가 이곳 저곳에서 많이 등장한다. 그건 그 당시 그럴 것이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기독교 교리가 등장하여 작가는 역사면 역사, 종교면 종교, 풍습이면 풍습, 관혼상제, 지리면 지리, 나무면 나무, 꽃이면 꽃 백과사전처럼 방대하다. 내용도 한 두쪽이 아니다. 한번 이야기가 시작이 되면 실타래가 다 풀릴 때까지 연면히 이어진다. 올해는 시조를 배울 생각이다. 전주에 도립국악원이 있다. 접수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이 소설 속에 시조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면을 할애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맨 처음 강모가 등장하여 주인공으로서 자주 등장할 줄 알았는데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고 실망스러운 행동으로 마음을 졸이게 했다.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지조가 없고 내심 시원한 모습을 보일 줄 알았는데 소설 내내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다. 강실이도 마찬가지다. 양반집댁 규수가 상놈 춘복이를 만나는 과정은 너무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래서 소설인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작품 앞 부분에서는 나중 거창한 결론들이 맺어질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풀롯이 엉성해지면서 용두사미격 이야기가 마지막에서는 이어진듯 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나중 확실한 선을 남기면 작품이 마무리될 듯 했으나 기대와는 좀 다르다.
그래도 대작이요 이렇게 멋진 작품을 오랜만에 읽어본다. 진즉 혼불을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정독하고 싶다.
작가 최명희의 전공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지만 작품 곳곳에 역사 이야기를 하면 역사학자가 울고 갈 실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어떤 분야이든 한 두장이 아니라 몇 장을 서술할 만큼의 실력을 보여준 작가이다. 마치 누에가 실을 뽑듯 끝없이 이어진다.
퇴직후 한문을 공부하고 싶어 칠팔년을 고전번역교육원을 드나들었다. 그때 한옥마을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을 가끔들러보기도 했으다.혼불을 제대로 읽기 전이라 건성으로 돌아봤다. 꽃 피는 봄이 오면 한옥마을에 있는 문학관을 가서 찬찬히 들러볼 생각이다. 혼불을 집필한 최명희 작가에게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2026.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