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대통령, 북 시민에 첫 연설 "평화의 큰 걸음 내딛자"
남쪽 대통령, 북 시민에 첫 연설 "평화의 큰 걸음 내딛자"
입력 2018.09.19. 23:26 수정 2018.09.20. 01:16 댓글 59개
문 대통령·김 위원장, 대집단체조 함께 관람
만찬 뒤 능라도 경기장 찾아
"백두서 한라까지 평화터전 만들자"
문 대통령 연설에 15만 관중 함성·박수
9·9절때 첫 공개 '빛나는 조국
'문 대통령 귀환 뒤 정치적 비난 우려해
체제선전 등 내용 일부 수정한 '배려'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를 관람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라 15만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중계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시민들을 향해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 북한 대중을 상대로 한 첫 연설이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이날 밤 9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았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1시간 반가량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관람한 문 대통령은 마지막 순서로 마이크 앞에 서서 평양 시민을 향한 연설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합의했다”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나는 김 위원장과 동포들이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며 “어려운 시절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 일어서고자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나는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5만여명의 북한 관중들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함성과 박수로 호응했다. 북한 최대 규모의 종합체육경기장인 5·1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의 귀중한 한 걸음의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공연단은 대규모 매스게임으로 경기장 관중석에 ‘온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강국 세우자’는 대형 글씨를 선보였다.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매스게임인 대집단체조는 중요한 기념일에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바를 체육과 예술적 형식에 담아내는 공연이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인 지난 9·9절을 맞아 드론 등 최신 기술을 동원해 ‘빛나는 조국’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연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두 정상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빛나는 조국’의 틀은 대체로 유지하되, 체제 선전 부분을 일부 들어내는 대신 문 대통령을 환영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문 대통령이 귀환한 뒤 남쪽에서 ‘북한 체제 선전극을 보고 왔다’는 식의 정치적 비난을 받지 않도록 김 위원장이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카드섹션을 할 때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길, 땅길, 바닷길 민족의 혈맥을 잇다‘ ‘헤어져 이대로 못살아 통일을 이루자‘ 등 주로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어 ‘해솟은 백두산은 내조국입니다‘라는 카드섹션이 나타날 때 배경화면으로 4·27 판문점선언 당시 두 정상의 사진이 등장하자 시민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상에서 첫 만남 뒤 악수를 하고,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에 서명하는 장면, 또 2차 정상회담 때 기념사진도 있었다. 공연자들은 모두 한반도기 흔들며 환호했고, 공연 내내 인공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앞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북한의 대집단체조인 ‘아리랑’을 관람한 것을 두고 남쪽에서 논란이 일었던 선례가 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전통 무용과 기악곡을 중심으로 짜인 공연 ‘평양성 사람들’을 봤다.
송경화 엄지원 기자 freehwa@hani.co.kr
김정은 위원장
친애하는 평양시민 여러분 대집단체조 화려한 공연 펼쳐준 청소년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평양시 각계층 인민들이 모여 하나와 같은 모습 마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남쪽 대표단을 따뜻하고 열렬히 맞아주는 모습 보니 감격스러운 마음입니다.
나와 문재인 대통령은 북남관계발전과 평화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의 이 귀중한 한걸음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 보내주길 바랍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회담을 기념해 평양시민 여러분 앞에서 뜻깊은 말씀을 하심을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줍시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시민 여러분 북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이렇게 만나게 돼 참으로 반갑습니다. 남쪽 대통령으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맹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평화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습니다. 김 위원장과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봤습니다. 얼마나 민족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자존심 지키며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습니다.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000만 겨레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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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오늘 많은 평양시민 청년 학생 어린이들이 대집단체조로 나와 우리 대표단을 뜨겁게 환영해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겨례 2018.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