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경 2013. 5. 27. 15:32

5교시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 학교 순회를 한번 정도는 했을텐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던지 5교시째 시간이 난 거 같다. 바쁘게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 3층 화장실이 눈에 설다. 자세히 보니 남학생 화장실 세면대가 깨져서 바닥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교장실로 돌아 오면서 학교 순회는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돌아다녀 봐야 이렇게 화장실 세면대가 깨진걸 아니까.

곧장 행정실에 들러 3층 화장실을 살펴보라고 주문을 하다. 예전 같으면 학생인권부실에 전화를 해서 먼저 이런 결과가 나타난 학생들의 행동을 분석하게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저런 절차를 생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조사하는 과정도 어렵고 찾고 보면 처리가 난감할 때가 있어서다.

그러나 그냥 넘어가기는 뭐해서 학생인권부장에게 전화를 하다. 6교시 후 쉬는 시간에 전화가 오다. 받아 보니 학생부장이다. 어떤 학생이 악의적으로 파손한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2학년 2반 학생이 발을 씻다가 그만 세면대가 와그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옆에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이 같이 있었다는 말까지 덭붙인다. 오히려 학생이 다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순간 판단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다. 우린 자기 생각대로 판단을 한다. 어떤 결과가 있으면 이것은 이런 원인으로 그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깨달은 게 있다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노라니 3학년 유재원이가 교장실에 고개를 내민다. 교장선생님 마실 것 없냐고 한다. 지난번 음료수 남은 게 있어서 주었더니 이젠 '교장선생님, 냉장고에 뭐 마실게 없냐'고 묻는다. 그렇게 인사하는 학생을 그냥 보낼 순 없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료수가 몇 개 들어있다. 두 개를 건네다. 다른 모르는 친구들과 있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다. 사랑스러워 사알짝 귀를 잡았더니 우스개 소리로 학교 폭력(?) 운운하면서 뭐라고 한다. 크게 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