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경 2018. 1. 27. 20:16

추운 건지산

이번 주 내내 한파가 몰려와서 건지산 갈 엄두도 못내다. 밖을 보니 나가도 될 성 싶다. 춥다고 테니스코트도 나가지 않았으니 운동도 부족함을 느끼다. 2시 반 되어가니 좀 날씨도 풀어졌으니 생각하고 나가기로 마음 먹다. 귀마개도 하고 장갑도 끼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2년전쯤 교감샘으로부터 받은 넥워머(neck wamer)가 생각난다. 작년 2월 짐을 학교에서 집으로 옮겨올 때 박스에다 다 일단 대충 쑤셔 넣어 가지고 오다. 혹 그 박스를 찾으면 되리라 보고 처음 두 번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는다. 분명 박스 속에 있음을 알고 찾아내다. 그런데 한 번도 안 해봐서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한 두 번 쓰고 벗다 보니 어떻게 하는 지를 알다. 등산화에 귀마개에 넥워머에 장갑에 나름 무장을 하고 나서다. 공기는 차다.

도로를 건너 우림아파트 내를 들어서서 가니 누가 나를 부르는 거 같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다. 영유아부실 환경 정리를 하고 이제 귀가한다고 한다. 평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끔 운동하다 뵌 분이다. 나름 주일학교 교육을 위해서 교사들이 고생하고 계신다. 성함을 알고 싶어서 물어보다. 이렇게라도 물어야 성도님들의 성함을 알 수 있을 거 같아서다. 이름에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한다.

장백산 뒷산을 올라 평지로 들어서다. 가는 길에 벤치 하나가 있다. 지나가다 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앉아서 가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본다. 오늘 보니 춥긴 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벤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서로 아는 분들끼리 담소도 나누는 모습이 익숙해보인다. 전엔 지나가기도 불편하게 한다 해서 다른 생각을 했지만 오늘 보니 몇 분이 앉아서 햇빛을 즐기고 계신다. 추운 건지산이 아니라 따사한 건지산이다.

소리의 전당을 지나 코트를 지난다. 그동안 코트와 친하게 지내다가 코트에 나가는 것이 뜸해진 것이 석달 전이다. 코트를 힐끔 바라보니 여전히 코트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테니스를 즐긴다. 추운 건지산이 아니라 따사한 건지산이다.

편백나무숲을 들어서다. 들어서면 궤도처럼 가는 길이 나름 정해져 있다. 비교적 여러 차례 돌아다니다 보니 이젠 괜찮은 길이라 생각하고 나름 걷게 되는 길이 생겼다. 어쩌면 자동 회로라고 할 정도로 그냥 가다보면 자연스레 그 길을 걷고 있다. 얼마만쯤 가니 어떤 사람 두 사람이 지나가다가 “6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닌데.....”라고 지나가는 데 누군가 60만원을 운전면허 따라고 해주었는데 주문한 대로 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아내와 같이 산을 걸었으면 하는데 한 두 번 같이 올라온 적은 있는데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 걷는데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구라도 같이 오면서 얘기라도 나누면 좋으리라 생각하는 데 바로 생각을 바꾸어 먹다. 나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편하게 산책하는 것도 좋으리라.

추운 건지산이 아니다. 따사한 건지산이다. 걷다 보니 그리 춥지 않다. 햇볕이 화사하게 비추어지는 산건너편 전주 도심도 따뜻하게 보인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니스 코트에서 축구장 족구장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 추위가 물러가는 듯하다. 지난 주 눈이 내려 질척 거리는 길은 눈이 녹아 말라서 먼지가 날 정도로 길이 말라 있다.

산을 다 내려와 동물원 곁길을 지나 도로를 건너고 대지 마을 거쳐 과수원길로 가다. 가면서 하모니카 곡 ‘꽃밭에서’ 곡을 마음 속에 그리다. 대충 외워진 거 같은데 4절 앞 두마디가 틀린 거 같다. 과수원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다. 보니 ‘나팔꽃도 어울리게’ 계명이 틀리다. 도오라소올미 도미솔라아아 로 정정하고 틀린 부분을 고쳐 전체 계명을 여러 차례 마음 속으로 리마인드(remind)하면서 오송지를 지나 돌아오다.

네시 넘어 집에 들어서다. 그래도 이번 주일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면 찜찜했을텐데 오늘 갔다 오니 한결 기분이 훨씬 낫다.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거 같은데 한 달이 다 간다. 세월 빠르다. 한 달 한 달 열두번 지나면 한 해가 간다. 이번 한 주가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