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아들 내외가 지난 4일 밤 놀러 왔다가 어린이날 우리와 같이 지냈다. 어린이날은 손자가 있기 전에는 어린이날이라는 인식이 크질 않았다. 오히려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다 보니 결혼기념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손자가 생기고 보니 손자에게 많은 것들이 집중된다. 손자를 잘 돌봐주어야 하고 손자가 돌아다닐 때 다치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야 한다.
어린이날 낮에 베란다로 나가더니 우리가 신고 있는 슬리퍼로 장난을 한다. 큰 신발을 신어볼려고 낑낑댄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비닐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세살박이 손자에게 신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꺼낸 물건은 아들과 딸이 30년전쯤 어렸을 적에 신었던 아주 앙증맞는 슬리퍼와 고무신이다.
빛이 바래긴 했지만 신발 그대로다. 아내가 손자에게 신겨 주면서 걸어보라 한다. 꽉 낀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다가 그만 벗는다.
아내는 나보다는 버리길 좋아한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와 산지 만 20년이 넘는데 지난 6년전 리모델링하면서 많은 물건을 버렸다. 그런데 이 신발은 버리지 않고 넣어 놓은 것이다. 버렸을 법도 한데 신발이 무엇이라고 보관했을까 하고 생각이 거기에 미처본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있었기에 어려서 생활하면서 많은 물건들을 사용했지만 애틋한 마음이 있었기에 보관했으리라 본다. 엄마로서 자식을 키우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 직후 나는 철부지 아빠였다. 그저 결혼만 했지 아내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았다. 살림하기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자식 양육과 살림은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무관심하게 생활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첫째와 둘째가 나이는 두살 터울이지만 연년생과 다름 없다. 둘을 키울 때 테니스를 배우고 있었다. 주말이면 아내 몰래 도망 나가서 테니스 코트에서 놀다 들어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신혼 초 셋방을 살았다. 그때 연탄을 땠다(?). 내 기억에 연탄 한장 갈아 준 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왜 그리 아내 도와 주는 것에 인색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 참 빠르다. 삼십년이 훌쩍 흘렀으니 말이다. 삼십년 흐르니 아들 녀석은 결혼해서 첫 손자를 낳고 이제 몇 달 후면 둘째 손자가 태어난다. 아직 딸은 공부만 하다가 이제 졸업하고 취직한 처지라 결혼은 후순위로 미뤄졌다. 좋은 혼처가 생겨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소망을 숨길 수 없다.
손자도 무럭무럭 자라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커주길 바란다. 요즘 내가 다쳐 병원을 다녀 보니 왜 그리 어린아이들이 많이 병원엘 오는지 상상 이상이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커주길 바라는 데 사람이 살면서 다치지 않을 수 없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커가는 과정에서 큰 일 없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