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목요일이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목요일은 가급적이면 등교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날이다. 출근하고 바로 학교 입구에 나가다. 학생들 맞이를 하고 아침 독서 시간이 되면 학급을 한바퀴 도는 게 일상이 되어 왔다. 정규 시간 중엔 한번 정도 교내 순회를 하는데 오늘은 2교시에 돌고 싶어서 2층 북쪽 복도를 지나가다 긴탁자에 눈길이 가다. 탁자 위를 보니 낙서가 되어 있다. 우리 익산어양중 학생들 장점 중 하나는 거의 낙서를 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탁자 위에 보기 흉하게 낙서가 되어 있다. 누군가 보여 주고 싶었는데 때마침 1학년 부장이신 이양* 선생님이 지나가신다. 항상 살갑게 말씀하시는 이부장님이어서 맘편하게 얘기를 꺼내다.
낙서 얘기 좀 하고 나선 요즘 1학년 학생들의 생활모습에 대해 넉두리를 하신다. 2학년만 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요즘 1학년도 만만치 않고 힘들어 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고 한다. 이반 저반에서 따돌림 문제도 있고 생활지도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시면서 힐링이 필요하단다. 요즘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 주말을 이용해서 힐링 캠프에 갔다 오신 분이다. 힐링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인데 요즘 상처나 스트레스로 인해 힐링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나 보다.
사실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고단하다는 방증이다. 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우리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교사들은 절실히 힐링이 필요하다. 너무나 에너지 넘치고 어디로 튀질 모르는 아이들이 교사를 엄청 힘들게 하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선생님이시지만 얘기 몇 마디 들어보면 저마다 상처 두어가지 정도는 안고 있는 거 같다. 겉으로 표현만 안할 뿐이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얘기할 때가 겁날때가 있다.
선생님을 뵙고 총총걸음으로 3층을 향하다. 교내 순회를 할때도 사물함 주위를 많이 돌아 보고 탈의실도 자주 점검을 한다. 교실에서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바라보거나 학생들이 어떻게 학습하는 모습은 거의 눈여겨 보지 않는다. 그냥 복도 바닥을 바라보고 머리 숙이고 죄인인양 조용히 지나간다. 그런데 4층 어느 반을 지나가노라니 선생님이 짜증얘기를 하시는 게 내 귀에 들리다. 요는 선생님이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묻는 것이 짜증난다고 대답을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짜증난다는 말에 그만 감정이 상하신 모양이다. 아! 이래서 힐링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다. 특히 학생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짬도 모르고 짜증난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말할 수 있어서 새겨 들을 필요도 있다. 요즘 아이들은 무조건 거칠고 순화되지 않는 말을 쓴다. 그래도 선생님이 감정을 추스르면서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하시는 거 같다.
이부장님이 저에게 숙제를 준 것이 계속 뇌리에 스친다. '교장선생님! 우리 힐링이 필요해요.' 유월이면 유월 육일 현충일이 있는데 그 다음날이 금요일이다. 재량휴업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고 제 마음을 떠봤기 때문이다. 교감선생님에게 막 건의하려고 가다 나를 만났다고 한다. 교감선생님이 건의할 때까지 고민해 보려한다. 고민할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